
아이 방에 예쁜 책상을 들여놓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런데 막상 혼자 들어가면 장난감을 만지거나 멍하니 있다가 나오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혼자 두면 집중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거실에서 공부시키는 건 시끄럽고 산만할 것 같아 선뜻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거실 공부로 바꾼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달라진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아이 방 공부가 실패한 이유
처음엔 준이 방에 공부 공간을 따로 만들어줬습니다.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을 손에 닿는 곳에 뒀습니다. 집중이 잘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스스로 앉아서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방에 들어가면 어느새 레고를 꺼내 만들고 있거나,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거나,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학습지 한 장을 끝내는 데 40분이 넘게 걸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제가 들여다볼 때마다 딴짓을 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잔소리가 시작됐습니다. 방문을 닫고 들어간 아이와, 밖에서 확인하러 들어가는 저 사이에 매일 긴장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구몬 선생님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혼자 방에서 공부하기보다, 가족이 보이는 공간에서 하는 것이 집중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나중에 직접 시도해보고 나서야 그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실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처음에 준이는 싫다고 했습니다. 감시당하는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감시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옆에서 제 일을 하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습니다. 학습지를 끝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 있었고, 저도 옆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환경 심리학에서는 학습 공간의 사회적 맥락이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혼자 있는 공간보다 다른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더 오래, 더 집중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효과라고 부릅니다. 준이가 거실에서 더 잘 집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출처: APA - Environmental Psychology and Learning)
거실 공부가 만들어준 뜻밖의 변화
거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겼습니다. 준이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준이가 학습지를 하는 동안 저는 책을 읽거나 내일 준비를 했고, 남편은 외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 지안이도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와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펼쳤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식탁이 각자의 것을 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그 시간이 하루 30분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는 특별한 시간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지안이가 네 살인데도 오빠가 공부하면 옆에 앉아서 색칠을 하거나 그림책을 펼칩니다. 엄마 아빠가 뭔가를 하고 있으니 자기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따로 독서 습관이나 학습 습관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보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더 강력하게 작동했습니다.
한국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나서 집에서 따로 공부방을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집중에 좋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게 맞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학년, 특히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혼자 방에 들어가 집중하는 것 자체가 아직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환경을 바꾸기 전에 아이의 발달 단계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을 거실 공부를 통해 배웠습니다.
거실 공부의 한계와 지금의 방식
거실 공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아닙니다. 지안이가 옆에서 시끄럽게 굴면 준이가 집중을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소리가 나거나 제가 전화를 받으면 흐트러지기도 했습니다. 거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여러 자극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한 집중 환경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조정했습니다. 아침 등교 전 학습지는 거실 식탁에서 합니다. 가족이 아직 움직이고 있는 시간이라 옆에서 함께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반면 숙제나 좀 더 집중이 필요한 것들은 저녁 식사 후 조용한 시간에 역시 식탁에서 하되, 그 시간엔 텔레비전을 끄고 다른 자극을 줄입니다.
방에서 혼자 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혼자 집중하는 능력도 길러져야 합니다. 다만 그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는, 함께하는 환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1년의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거실 식탁이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일어나는 공간이 됐습니다. 공부도, 밥도, 대화도, 그리고 가끔은 보드게임도 그 자리에서 합니다.
학습 환경 연구에서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이 완전히 발달하기 전인 초등 저학년 시기에는 부모나 형제가 함께 있는 반구조화된 환경이 혼자 있는 완전히 독립된 환경보다 학습 효율이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혼자 두는 것이 독립심을 키운다는 생각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가 됐을 때 독립된 공간을 주는 것이 순서입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Study Enviro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