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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라는 말 끊었더니 생긴 일 — 자율·내적동기·환경

by jamieseo1999 2026. 6. 9.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공부해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세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침에 한 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 번, 저녁에 또 한 번. 그 말을 할 때마다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을 의식적으로 끊었습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공부해를 끊기로 결심한 이유

준이가 구몬 학습지를 시작하고 6개월쯤 됐을 때였습니다. 매일 아침 등교 전에 학습지를 마치는 것이 규칙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준이가 학습지를 꺼내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리에 앉히면 멍하니 있다가 시간만 보냈습니다. 공부해, 빨리 해, 집중해. 그 말들이 반복됐고, 준이는 점점 더 저항했습니다.

어느 날 준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할 때마다 하기 싫어져요." 그 말이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공부하라는 말 자체가 공부를 싫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요가 반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공부해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습지를 꺼내라는 말도, 빨리 하라는 재촉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학습지를 아이가 잘 보이는 식탁 위에 올려뒀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첫 이틀은 준이가 학습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준이가 스스로 학습지를 꺼냈습니다.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오늘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이 작은 것 같지만, 저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는 외부 압박에 의한 행동과 내적 동기에 의한 행동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외부 압박으로 시작된 행동은 압박이 사라지면 행동도 사라집니다. 반면 내적 동기에서 나온 행동은 스스로 지속하려는 힘이 생깁니다. 공부해라는 말을 끊은 것이 외부 압박을 제거하고 내적 동기가 자랄 공간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말 대신 환경을 바꿨습니다

공부해라는 말을 끊은 대신, 환경을 바꾸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학습지를 늘 같은 자리에 뒀습니다. 연필과 지우개도 바로 옆에 있게 했습니다.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모두 준비된 상태로 있게 한 것입니다. 시작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식탁에 앉아서 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을 열거나 책을 읽거나. 부모가 먼저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왔습니다. 준이는 학습지를, 지안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타이머도 도움이 됐습니다. 공부해가 아니라 20분 타이머 맞춰볼게라고 했습니다. 타이머가 울리면 끝이라는 것을 알면 시작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웠습니다. 준이가 타이머를 직접 맞추게 했습니다. 본인이 맞춘 것이니 그 시간을 더 잘 지켰습니다. 타이머가 울렸을 때 아직 못 끝낸 날도 있었지만,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앉아서 집중하는 시간 자체가 쌓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호주 학교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씁니다. 선생님들은 공부해라고 말하는 대신 환경을 만듭니다. 탐구하고 싶어지는 재료를 놓아두고, 선택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방식이 집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달라진 것과 여전히 어려운 것

공부해를 끊고 나서 달라진 것들이 있습니다. 준이가 학습지를 스스로 꺼내는 날이 늘었습니다. 완전히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저항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 저에게도 편했습니다. 공부해라는 말을 하면 저도 스트레스였습니다. 그 말을 줄이니 아침이 덜 팽팽해졌습니다.

준이가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독서를 강요하지 않고 집 곳곳에 책을 두고, 도서관에서 스스로 고르게 했더니 읽는 양이 늘었습니다. 읽어야 해서 읽는 것과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준이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날이 길어지면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 충동을 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부해를 끊은 것이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루틴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학습지를 마치는 루틴은 여전히 유지합니다. 다만 그것을 말로 강요하는 대신, 환경과 분위기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부 문화를 보면 공부해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입니다. 학원을 다녀와서도 공부해, 밥 먹고 나서도 공부해. 그 말이 너무 많아지면 공부 자체가 싫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호주에서는 그 말을 거의 듣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대신 아이가 스스로 탐구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두 문화를 경험하면서 말보다 환경이 더 강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율성 지지(Autonomy Support) 연구에서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의 자율성을 지지할 때, 즉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결정하게 할 때, 아이의 학습 동기와 지속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공부해라는 말을 끊은 것이 아이에게 선택권을 돌려준 것이었습니다. 그 선택권이 내적 동기를 만들었습니다. 말보다 환경, 강요보다 자율이 더 오래 가는 공부 습관을 만든다는 것을, 준이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 Autonomy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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