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살 차이 나는 형제자매를 키우고 있다면,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형은 규칙을 지켜야 하는 보드게임을 하고 싶고, 동생은 그냥 말을 집어던지고 싶습니다. 형은 진지하게 레고를 조립하는데 동생이 와서 무너뜨립니다. 같이 놀라고 해도 결국 따로 놀고, 억지로 같이 놀게 하면 싸움이 납니다. 저도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다섯 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준이가 아홉 살, 지안이가 네 살입니다. 숫자로만 보면 다섯 살 차이지만, 실제 발달 단계로는 훨씬 더 크게 느껴집니다. 준이는 규칙이 있는 게임을 즐기고, 혼자 책을 읽고, 복잡한 레고를 조립합니다. 지안이는 아직 규칙보다 감정이 먼저이고, 집중 시간이 짧고,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울음이 나옵니다.
처음엔 둘이 함께 노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려 했습니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자, 같이 블록을 쌓자. 그런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준이는 지안이가 규칙을 안 지킨다며 짜증을 냈고, 지안이는 오빠가 자기 방식대로 안 해준다며 울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제가 개입해서 중재하다 보면 셋 다 기분이 나빠지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둘이 함께 노는 것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각자 노는 것을 존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접점을 찾아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요. 억지로 붙여놓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고 싶어지는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동 발달 연구에서는 나이 차이가 4년 이상 나는 형제자매는 놀이 발달 단계가 달라 자연스러운 공동 놀이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이 경우 부모가 중재자 역할을 하되, 큰 아이에게 작은 아이 수준에 맞추도록 강요하기보다 두 아이가 각자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Sibling Age Gaps)
억지로 같이 놀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고 나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준이가 유튜브에서 공룡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안이가 와서 뭐 보냐고 묻더니 옆에 앉았습니다. 준이는 처음엔 귀찮아했는데, 지안이가 공룡 이름을 따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30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제가 유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날엔 지안이가 색칠을 하고 있었는데, 준이가 지나가다 앉더니 어떻게 칠하면 더 예쁜지 알려줬습니다. 지안이는 오빠한테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준이는 선생님이 된 것처럼 진지하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시간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을 때, 그리고 한쪽이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한쪽이 배우는 구조가 생길 때 둘이 가장 잘 어울렸습니다. 억지로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지안이가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도 있습니다. 집에서 배운 동작을 준이 앞에서 보여주는데, 준이가 따라 하겠다며 일어섰습니다. 둘이 거실에서 엉망진창의 발레를 하며 깔깔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노는 것이 꼭 같은 활동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기다리면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나이 차이가 나는 형제 사이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잘 안 놀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방식을 찾아갑니다. 준이가 지안이를 귀찮아했던 시기가 있었고, 지안이가 오빠를 무서워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둘이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준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지안이한테 먼저 "오늘 어린이집 어땠어?"라고 묻는 날이 생겼습니다. 지안이가 넘어져서 울면 준이가 먼저 달려가는 날도 생겼습니다. 제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냥 시간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이 차이 나는 형제를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큰 아이에게 무조건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빠니까, 언니니까. 그게 오히려 큰 아이의 억울함을 쌓게 만들고, 동생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키운다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봤습니다. 양보를 강요하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을 찾아주는 것이 더 오래가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형제 관계 연구에서는 나이 차이가 클수록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큰 아이에게 작은 아이를 가르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부여할 때, 큰 아이는 책임감과 자존감을 키우고 작은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 대상을 하나 더 갖게 된다고 합니다. 준이가 지안이에게 공룡 이름을 알려주던 그 30분이 정확히 그 역할을 했습니다. (출처: APA - Sibling Relationships Across the Lifespan)
지금도 둘이 싸우는 날이 있습니다. 차 안에서 장난감 때문에 다투고, 텔레비전 채널 때문에 실랑이를 벌입니다. 완벽하게 사이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싸우는 것도 관계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그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