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열심히 사줬습니다. 도서관도 자주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책을 집어 들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앉혀 읽히면 5분도 안 돼서 딴 곳을 바라봤습니다. 독서 교육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패했던 방식들, 그리고 그 이후 달라진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독서 교육에서 제가 했던 실수들
준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히고 싶어서 매주 도서관에 갔고, 그때마다 제가 골라준 책들을 빌려왔습니다. 아이에게 좋을 것 같은 책, 교육적인 내용이 담긴 책, 수상 경력이 있는 책들이었습니다. 집에 오면 오늘 빌려온 책을 읽자고 했습니다.
준이는 제가 고른 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두 페이지 보다가 덮거나, 그림만 훑어보고 내려놨습니다. 저는 내용이 좋은 책인데 왜 안 읽냐며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읽으라고 강요하고, 준이는 더 싫어하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독서를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접근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또 하나의 실수는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을 확인하려 했다는 겁니다. 무슨 내용이었어, 주인공이 어떻게 됐어, 재미있었어. 아이 입장에서는 시험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재미있게 읽고 싶었는데, 읽고 나면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준이가 책 읽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독서를 교육으로 접근하는 순간, 책은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는 것을. 제가 독서 교육을 열심히 할수록, 아이는 책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선택권을 주자 달라졌습니다
방향을 바꾼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습니다. 도서관에서 제가 고른 책을 거들떠보지 않던 준이가, 혼자 책장을 돌아다니다가 공룡 도감을 꼭 빌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두껍고 글씨도 작았습니다. 이걸 읽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냥 빌려줬습니다.
집에 와서 준이는 그 책을 펼쳐놓고 한 시간 넘게 들여다봤습니다. 그림을 보고, 이름을 읽고, 저한테 설명해줬습니다. 이거 봐요 엄마, 이 공룡은 이름이 이래요, 이건 육식이고 이건 초식이에요. 제가 고른 어떤 책보다 오래, 더 깊이 읽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준이의 몫이 됐습니다. 저는 그냥 따라다니며 아이가 꺼내는 책들을 같이 봤습니다. 처음엔 공룡 책만 골랐고, 그다음엔 비슷한 과학 도감들을 골랐고, 어느 순간 이야기책도 함께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Anh Do의 그래픽 소설 시리즈에 빠졌다가, 그것이 David Walliams의 좀 더 긴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독서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제가 유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 선택권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습니다. 만화책만 고르거나 너무 쉬운 책만 보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독서 연구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책을 읽을 때 독해력, 집중력, 독서량 모두 증가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고른 좋은 책보다, 아이가 스스로 고른 별것 아닌 책이 독서 습관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출처: National Literacy Trust - Reading Choice and Motivation)
반복이 문해력을 만들었습니다
준이가 특정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Julia Donaldson의 책들, 특히 Room on the Broom은 정말 질리도록 읽었습니다. 같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할 때마다 솔직히 다른 책은 어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읽어줬습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들은 책을 준이는 어느 순간 통째로 외웠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 책을 읽어주는 옆에서 앞 내용을 먼저 줄줄 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복 독서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감했습니다. 지루한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과정이었고, 그 익숙함이 언어 감각으로 쌓이고 있었습니다.
지안이에게도 같은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하면 그냥 읽어줍니다. 몇 번째인지 세지 않습니다. 지안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그 책을 집에 두고, 잠자리에서 자주 꺼냅니다. 준이 때보다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짧더라도 매일 읽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반복 독서(Repeated Reading)는 아이의 유창성, 어휘력, 이해력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영유아기에 같은 책을 반복해서 들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어휘 발달이 빠르고, 이후 독립적인 읽기 능력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이가 같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배우는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출처: Reading Rockets - Benefits of Repeated Reading)
독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독서 교육보다 먼저였습니다
지금 저희 집에는 책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거실 소파 옆에도, 식탁 위에도, 아이들 방에도. 손에 닿는 곳에 책이 있으면 심심할 때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 됩니다. 일부러 배치한 것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그냥 집에 책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토요일 오전에는 되도록 도서관에 함께 갑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고르게 하고, 저도 읽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준이와 저는 가끔 같은 작가의 책을 각자 골라서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Roald Dahl 책을 준이가 먼저 소개해줬을 때, 저도 다른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대화가 독서를 교육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독서 교육에서 실패했던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달라진 것은 딱 하나입니다.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책과 함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