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꼭 한 번은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혹은 오빠는 왜 더 많이 받아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똑같이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완전한 공평함이 가능한 일인지 점점 의문이 생겼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공평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똑같이 해주려다 오히려 더 불공평해졌습니다
준이가 일곱 살, 지안이가 두 살이었을 때였습니다. 준이 생일에 케이크를 사주면서 지안이 몫도 따로 챙겨줬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줄 때도 두 개를 똑같이 샀습니다. 어디를 가든 같은 것을 사줘야 형평성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방식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준이가 학교에서 칭찬 스티커를 받아서 기분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준이한테 잘했다고 아이스크림을 사줬는데, 지안이가 옆에서 나도 달라고 했습니다. 지안이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는데, 그냥 형이 받으니까 자신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고민이 됐습니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준이의 성취가 희석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준이를 위해 사준 것이 준이만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공평함을 똑같이로 정의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방식을 바꿨습니다. 각자의 성취나 필요에 맞게 다르게 대응하되,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준이가 칭찬을 받았으면 준이를 위해 뭔가를 해주면서, 지안이에게는 지안이가 잘한 것을 따로 찾아서 인정해줍니다.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유로 받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공평함을 동등성(Equality)과 형평성(Equity)으로 구분합니다. 동등성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고, 형평성은 각자의 필요에 맞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형평성입니다. 나이도 다르고 기질도 다른 두 아이에게 똑같이 하는 것이 오히려 각자의 필요를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APA - Sibling Differential Treatment)
첫째에게 더 많이 요구하고, 둘째에게 더 많이 허용했습니다
솔직하게 돌아보면 준이와 지안이를 다르게 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준이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자기 물건 정리, 집안일 돕기, 동생에 대한 배려. 오빠니까, 더 컸으니까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지안이에게는 아직 어리니까라는 이유로 더 많이 허용했습니다.
준이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알았습니다. 차 안에서 지안이와 장난감 때문에 다퉜을 때, 제가 준이에게 오빠니까 양보해라고 했습니다. 준이가 화를 냈습니다. 왜 항상 나만 양보해야 해요? 그 말이 맞았습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준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오빠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양보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면, 왜 이 상황에서 양보가 좋은 선택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지안이가 먼저 양보하는 경험도 만들어줍니다. 형이니까 동생이니까가 아니라, 상황마다 이유가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지안이에게는 반대로 조금 더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살이 됐으니 식사 후 자기 그릇은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 것, 신발은 스스로 신는 것. 준이가 했던 것들을 지안이에게도 나이에 맞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저항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안이가 뭔가를 스스로 해냈을 때 준이가 잘했다고 먼저 말해주는 날도 생겼습니다.
형제자매 관계 연구에서는 부모가 형제자매를 다르게 대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 차이가 납득 가능할 때 아이들이 더 잘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이유 없이 다르게 대우받는다고 느낄 때 형제간 갈등이 생기고, 이유가 설명될 때 각자의 위치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왜 다른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처: Zero to Three - Sibling Relationships)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진짜 공평함이었습니다
지안이는 엄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지안이에게는 옆에 있어주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특별한 것을 해주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는 것이 지안이에게는 충분합니다. 준이는 다릅니다. 함께 있는 것보다 대화가 더 중요합니다. 준이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반응해주는 것이 준이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줍니다.
같은 부모인데 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다릅니다. 똑같이 한다는 것이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지안이에게 대화를 강요하거나, 준이에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둘 다 필요한 것을 못 받게 됩니다.
완벽한 공평함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어떤 날은 준이에게 더 집중하고, 어떤 날은 지안이에게 더 집중합니다. 그 균형이 하루 단위가 아니라 더 긴 흐름 속에서 맞춰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생기면,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들어주고 설명해줍니다. 공평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면 충분합니다.
한국에서는 형제자매 간의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오빠니까, 언니니까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호주는 그 점에서 다릅니다. 나이보다 상황과 개인의 필요가 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두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두 아이를 키우는 저의 과제입니다. 완벽한 공평함은 없지만, 각자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