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어둔 그림을 지나치다가, 아이가 제 손을 잡고 물어요. "엄마 이건 제가 뭘 그린 줄 아세요?" 그리고 아이가 제 눈을 보며 한참 수다를 떨었던 것 같아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가 신이 나 떠들던 시간과 그것을 바라보던 흐뭇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미술학원 그림, 벽에 전시회처럼 걸어두기
첫째가 다섯 살 때 반년 넘게 매주 토요일마다 미술학원에 다녔어요. 워낙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색칠하는 것을 좋아해서 매번 즐겁게 다녔죠. 2시간 정도 수업 시간이 끝나면 완성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어요. 그것들이 한 장 두 장 쌓여 갔죠.

처음엔 그날그날 보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책꽂이에 한 장 두 장 쌓아만 뒀어요. 그러다 그렇게 두는 것이 아깝더라고요. 아이도 저도 볼 수 있게 벽에 미술 전시회처럼 그림을 한 장씩 붙여 두었어요. 어느새 한쪽 벽이 꽉 차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한 장씩 한 장씩 벽을 채우는 재미도 있고, 그림 안에서 아이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어요. 아이가 그림 옆을 무심코 지나가다, '엄마, 저 그림을 그릴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라며 뜬금없지만 한참 수다를 떤 적도 있어요. 저는 그저 즐겁게 들어 주었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무슨 그림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화를 나눌 때의 즐거움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어요.
둘째도 오빠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죠. 그리고 오빠에게 들고 가 "이거 잘 그렸어?"라고 묻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요. 집안이 작은 미술 전시관이 되었죠.
아이 포트폴리오, 두꺼운 폴더 하나로 시작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각종 만들기, 그리기, 글쓰기를 하고 나면 들고 오는 작품들이 계속 하나둘씩 늘어났어요.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미 장성한 두 자녀를 기른 선배 엄마분이 조언해 주셨죠.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볼 수 있게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어 두라고요. 그럼 자신의 관심사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것들을 잘했는지 볼 수 있게 되고 커리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요. 가치 있는 조언이라고 여겨졌어요.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바로 아이들 이름의 폴더를 하나씩 만들었죠. 아이들이 그림이나 글, 그리고 상장들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어요.
첫째의 경우 꽤 많은 것들이 쌓여 있죠. 그동안 그린 그림들, 글들, 그리고 상장들을 모아 두었어요.
이제 학교에 들어간 둘째의 폴더도 만들어 두었어요. 앞으로 둘째의 기록들을 그 안에 넣어 가겠죠.
나중에 이 폴더들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고흐 따라 그린 해바라기는 액자에, 나머지는 사진으로
아이들이 때마다 그리고 만든 것들을 버리기 아까워 쌓아 두니, 결국은 짐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첫째가 미술학원에서 그린 그림들도 벽에 붙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쌓아 두기만 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점점 많아지니 그것들이 쌓이는 걸 피할 수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방송인 신애라 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어요.
집이 잡동사니 없이 굉장히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방송 활동을 하면서 받은 수많은 트로피와 상장들이 하나도 없어서 리포터가 물으니, 소중한 것들이지만 점점 너무 많아져서 다 처분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간직한다고 했죠. 정말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었던 아이들의 그림이나 만들기 작품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두고, 정말 간직하고 싶은 것만 두고 모두 버렸어요. 예를 들어 첫째가 고흐의 작품을 보고 그린 해바라기 그림은 정말 잘 그려서 액자에 넣어 둔 채 거실에 두고 있죠.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만들고 그린 작품들은 모두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이 돼요. 하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짐같이 느껴지는 건 피할 수 없죠. 사진으로 간직하는 건 공간도 넓히고 추억은 추억대로 간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