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이와 지안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이 뇌 발달에 좋다고 알려진 것들이 꼭 비싸거나 거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원, 교구, 선행학습보다 오히려 일상 속에 이미 있는 것들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영, 청소, 보드게임. 저희 집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뇌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수영은 호주에서 선택이 아닙니다
호주에서 수영은 스포츠라기보다 서바이벌 스킬에 가깝습니다. 바다와 강이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수영은 배우는 것이 당연한 기술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준이와 지안이 모두 어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물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둔 부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낍니다. 준이와 지안이는 수영 배우는 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수영을 하고 난 날이면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더 활동적이 되고, 집중력을 요하는 활동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처음엔 그냥 운동을 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패턴이 반복되면서 수영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뇌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뇌과학 박사 장동선 박사는 수영이 포유류가 가진 '다이빙 리플렉스' 때문에 특별한 안정 효과를 준다고 설명합니다. 찬물이 얼굴과 목, 어깨에 닿는 순간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박수가 낮아지고 마음이 침착해진다는 겁니다. 또한 수영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과 스크린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자동적인 디지털 디톡스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물속에 있는 동안 뇌가 스크린 자극에서 벗어나 청소되는 시간을 갖게 되고, 이것이 집중력 향상과 불안감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수영 후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으로 먼저 알았고, 그 이유를 나중에 과학으로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출처: Journal of Physiological Sciences)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돼요?"
청소를 처음 시켰을 때 아이들의 첫 반응은 예상 가능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돼요?" 준이도, 지안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직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저는 길게 설득하는 대신 한 가지만 반복했습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공헌해야 한다고.
완전한 이해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습관이 되길 바랐습니다. 이해는 나중에 따라온다고 믿었습니다. 불평이 가득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움직입니다. 밥 먹기 전에 테이블을 세팅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를 정리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이 먼저 갑니다.
저는 아이들이 청소를 마치면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가족을 위해 기여했을 때 그것이 인식되고 감사히 여겨진다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것, 그게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자존감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장동선 박사는 청소가 아이에게 가장 확실하게 행동의 피드백이 돌아오는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어수선한 공간이 깨끗해지는 즉각적인 변화를 통해 아이는 '내가 했더니 됐다', '내가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성공 경험을 쌓는다는 겁니다. 공부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청소는 노력에 대한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키우는 데 효과적인 이유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는 이 감각이 학습 동기와 성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Bandura, A., Self-Efficacy: The Exercise of Control)
나이가 많다고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보드게임을 처음 가족이 함께 시작했을 때, 걱정이 됐던 건 4살 지안이였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에 민감한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더 많이 타일러야 했던 건 9살 준이였습니다.
준이는 질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표정이 굳어지고, 게임이 불리하게 흘러가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더 많으니 감정 조절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재미를 위한 것이다, 그 말을 몇 번씩 반복해야 했습니다. 오히려 지안이가 더 해맑게 게임을 즐기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준이가 감정을 조절하며 게임을 끝까지 하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는 게임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날이 늘었고,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측하며 전략을 짜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드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걸, 준이의 변화를 보며 실감했습니다.
장동선 박사는 보드게임이 공감 능력과 예측 능력을 키우는 데 탁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전략만으로는 이길 수 없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몰입해서 배우는 시뮬레이션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보드게임은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아이의 평소 성향, 감정 조절 수준, 경쟁을 다루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준이가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 학교생활에서도 비슷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출처: American Journal of Play)
결국 수영, 청소, 보드게임. 세 가지 모두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이미 일상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학원 한 곳을 더 보내는 대신, 오늘 저녁 함께 보드게임 한 판을 꺼내는 것. 그게 아이의 뇌에 더 오래 남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