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이 되면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게임을 찾습니다. 그걸 막으면 심심하다며 늘어지고, 허용하면 하루가 화면 앞에서 끝납니다. 스크린 없이 주말을 보내는 게 가능한 일인지,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방법이 생겼습니다.
스크린을 끄면 처음엔 난리가 납니다
처음 스크린 없는 주말을 시도했을 때 준이의 반응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심심해요, 할 게 없어요. 텔레비전을 안 켜면 어색하게 돌아다니다가 결국 저한테 와서 뭐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기회였습니다.
그날 거실에 레고를 꺼냈습니다. 제가 먼저 앉아서 만들기 시작하니 준이가 옆에 앉았습니다. 지안이도 왔습니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텔레비전을 찾지 않았습니다. 스크린이 없어서 지루했던 것이 아니라, 스크린이 있으면 다른 것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안이 생기자 스크린 없이도 괜찮았습니다.
그 이후로 주말 오전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전에는 다른 것을 먼저 하는 순서를 만든 것입니다. 아이들도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텔레비전 대신 다른 것을 찾는 날이 늘었습니다.
비구조화 놀이(Unstructured Play) 연구에서는 어른이 정해준 규칙 없이 아이가 스스로 주도하는 놀이가 창의성, 자기조절 능력,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스크린이 없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연습이 됩니다. (출처: Play Australia - Unstructured Play)
호주 자연이 스크린의 대안이 됩니다
호주에서 스크린 없는 주말이 비교적 수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연입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원과 놀이터가 있고, 조금 더 가면 산책로와 자연이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선택지가 됩니다.
토요일 오전에는 도서관에 함께 갑니다.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르게 하고, 저도 읽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퍼즐을 하거나, 조용히 앉아서 각자의 것을 합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놀이터에 들러 실컷 뛰어놀고 돌아옵니다. 스크린 없이도 오전이 충분히 채워집니다.
준이는 공원에서 나뭇가지를 줍거나 돌멩이를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엔 왜 저런 걸 가져오나 싶었는데, 집에 와서 돌멩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나뭇가지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그 시간이 창의력이 자라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자연 놀이(Nature Play)가 아이의 집중력, 스트레스 조절, 면역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비구조화된 야외 활동은 아이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 즉 계획하고 집중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주말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스크린의 가장 강력한 대안인 이유입니다. (출처: Association of Nature and Forest Therapy)
스크린 없는 시간이 대화를 만듭니다
스크린이 없는 주말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대화였습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으면 각자 화면을 보다가 시간이 지납니다. 스크린이 없으면 서로를 봅니다. 밥을 먹으면서, 공원을 걸으면서, 레고를 만들면서 이야기가 생깁니다.
걷는 동안 나누는 대화가 특히 많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다가 작가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산책 중이었고, 준이가 고생물학 대학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공원을 걷다가였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그 시간이 집에서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완전히 스크린 없는 주말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오거나, 부모가 피곤한 날, 아이들이 아픈 날에는 텔레비전을 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갖기보다, 대부분의 주말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완벽한 스크린 프리가 목표가 아니라, 스크린 없이도 풍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경험이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