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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 정체성·소속감·대화

by jamieseo1999 2026. 5. 21.

정체성·소속감·대화
정체성·소속감·대화

준이가 일곱 살 때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호주 사람이에요?" 간단해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말해주는 것이 맞을지 순간 고민이 됐습니다. 그날의 대화가 시작이 됐습니다.

그 질문이 왜 나왔는지 먼저 들었습니다

바로 대답하기 전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준이는 학교에서 친구가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준이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아빠는 호주 사람이고.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고를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준이가 이 질문을 꽤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일곱 살 아이에게 정체성이라는 것이 이미 고민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호주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되는데, 준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준이는 둘 다야.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호주 사람이기도 해. 그게 준이만 가진 특별한 거야. 두 나라를 다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어." 준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습니다. "그럼 친구한테 뭐라고 해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둘 다라고 하면 되지. 그게 사실이니까."

그날 이후 준이가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나는 한국계 호주인이라고 소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표현이 준이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는 게 기뻤습니다.

이중 문화 정체성(Bicultural Identity) 연구에서는 두 문화 사이에서 자란 아이들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반면 두 문화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통합하도록 지원받은 아이들은 더 높은 자존감과 사회적 유연성을 보인다고 강조합니다. 둘 다라고 대답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출처: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두 가지 정체성이 충돌할 때

모든 순간이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준이가 학교에서 한국 음식 냄새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날이 있었습니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줬는데, 친구가 이게 뭔 냄새냐고 했다는 겁니다. 준이가 집에 와서 내일은 한국 음식 말고 샌드위치를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강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겠어, 내일은 샌드위치 싸줄게. 그런데 김밥이 이상한 음식은 아니야. 한국에서는 다 먹는 거고, 엄마는 맛있다고 생각해. 준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준이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준이가 스스로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김밥 싸줘요. 친구들한테 한번 먹여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간이 있었던 겁니다.

한국에서 자란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정체성 문제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한국 아이들은 정체성 혼란보다는 집단 속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튀면 안 된다는 분위기, 같아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다고 합니다. 준이는 반대로 다름을 인정받는 환경에 있지만, 그 다름이 때로는 외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준이가 자신의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체성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준이는 지금도 가끔 이 질문을 다시 꺼냅니다. 형태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하는가. 그 질문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그 질문을 계속 하는 아이가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저도 호주에 이민을 오면서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인가, 호주 사람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가지가 다 나라는 것, 그리고 그게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준이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결론을 내릴 필요 없다고. 한국어를 할 때의 준이와 영어를 할 때의 준이가 둘 다 준이라고. 그 두 가지가 어우러져 있는 것이 준이만의 것이라고. 그 말이 완전히 닿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계속 말해줄 생각입니다.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발달 이론에서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자아 정체성 형성이 핵심 발달 과제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 아이는 더 안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강조합니다.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함께 탐색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었습니다. (출처: APA - Erikson's Stages of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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