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서 엄마가 싫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그냥 화나서 하는 말인지 헷갈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준이가 그 말을 처음 했던 날, 저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이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은 날
준이가 여섯 살 때였습니다.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다고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집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준이가 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결국 제가 손을 잡고 끌고 나왔습니다.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준이가 울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싫어! 엄마가 제일 싫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머리로는 아이가 화가 나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너무 강압적이었나. 그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준이도 진정이 필요했고, 저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준이 옆에 앉았습니다. 아까 많이 화났었지. 더 놀고 싶었는데 갑자기 가야 한다고 해서 속상했겠다. 준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화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났다고 말해도 돼. 그런데 엄마 싫어라는 말은 좀 아팠어. 준이가 잠깐 있다가 사실은 안 싫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안심이 됐습니다. 아이의 그 말이 진짜 감정이 아니라 화남의 표현이었다는 것을요.
아동 심리학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복잡한 감정을 단순한 말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화가 났을 때 그 감정 전체를 싫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순간의 좌절감과 분노를 표현할 다른 언어를 아직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Understanding Big Emotions)
그 말에 대한 반응이 관계를 결정했습니다
그날 이후 준이가 비슷한 말을 몇 번 더 했습니다. 화가 날 때, 원하는 것을 못 했을 때. 처음보다는 덜 충격적이었지만, 매번 마음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응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그 말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싫어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에 상처받은 것을 보이기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먼저 살펴봤습니다. 화가 난 이유를 다루면, 그 과한 표현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았습니다.
동시에 제 감정도 솔직하게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이 아팠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 그런데 준이가 화났을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그 두 가지를 같이 말해줬습니다. 아이의 감정도 인정하고, 제 감정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균형이었습니다.
지안이도 비슷한 단계를 거치기 시작했습니다. 떼를 쓰다가 엄마 미워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립니다. 그 말이 지안이의 진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화났구나, 라고 먼저 받아주고 기다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안이도 안 미워요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감정 코칭(Emotion Coaching) 연구에서 존 가트만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 표현에 부모가 침착하게 반응할 때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더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그 말에 똑같이 상처받고 화를 내면, 아이는 감정 표현이 위험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반대로 차분하게 받아주면, 강한 감정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Emotion Coaching)
그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준이가 자라면서 엄마 싫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화가 나면 짜증 나요, 속상해요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들을 천천히 배워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한 것은 준이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났구나, 속상하구나, 답답하구나. 다양한 감정 단어를 들려주면서, 싫어라는 단순한 단어 대신 더 정확한 표현을 찾아가도록 도왔습니다. 그 어휘가 쌓이면서 준이의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는 어릴 때 그런 말을 하면 크게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엄마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 반응이 감정을 더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준이에게는 다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강한 감정도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요.
지금 준이는 화가 나도 그 감정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아이가 됐습니다. 엄마 지금 좀 답답해요, 이거 너무 짜증 나요. 그 말들이 엄마 싫어보다 듣기에 훨씬 편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 그 첫 번째 엄마 싫어를 잘 받아준 덕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이의 강한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준 것이, 결국 더 건강한 감정 표현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