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는지, 학교에서 어울리고 있는지는 부모라면 누구나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를 친구로 사귀느냐, 그리고 그 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느냐는 아이의 인성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준이가 입학 첫날부터 지금까지 5년째 같은 친구 옆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그냥 옆자리 친구였습니다
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같은 반에 자폐스펙트럼장애(ASD)와 ADHD를 함께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됐습니다. 어떤 영향을 받을지, 수업이 방해받지는 않을지. 부모로서 자연스럽게 드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준이는 그 친구를 그냥 친구로 대했습니다. 집에 와서 오늘 그 친구가 수업 중에 갑자기 일어났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데리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그런 날에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섯 살짜리가 그 상황을 그렇게 읽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어느 날 준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그 친구가 줄 설 때 헷갈려 해서 제가 옆에서 알려줬어요." 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스스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준이가 그 친구 옆에 자주 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에게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발달 장애입니다. 감각 자극에 민감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일관되게 옆에 있어주는 또래 친구의 존재는 학교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준이가 한 것이 작은 행동처럼 보여도, 그 친구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출처: Autism Spectrum Australia)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합니다
1학년이었던 준이가 이제 4학년이 됐습니다. 그 친구와는 매년 같은 반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하고 옆에 있어줍니다. 쉬는 시간에 그 친구가 혼자 있으면 다가간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걸어줍니다.
어느 날 준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오늘 그 친구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뭐가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준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이 상담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준이가 그 친구에게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관된 방식으로 대한다고. 특별히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대한다는 것이 그 친구에게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준이가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또래 지원(Peer Support)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학교 적응과 사회성 발달에 전문가 개입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일관되게 함께하는 또래 친구의 존재는 ASD 아이의 불안을 낮추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준이가 5년 동안 해온 것이 그 역할이었습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Peer Support)
준이가 배운 것, 제가 배운 것
5년 동안 그 친구 옆에 있으면서 준이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읽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친구가 오늘 힘들어 보인다, 저 친구는 큰 소리를 싫어한다,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알아챕니다. 공감 능력이 자란 것입니다.
그리고 다름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준이에게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냥 그 친구의 특성입니다. 특별히 불편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학교에서 먼저 배운 것입니다.
저도 배운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 친구가 같은 반이 됐을 때 나쁜 영향을 받을까 걱정했던 것.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준이가 그 친구에게서 배운 것이, 어떤 수업보다 깊은 것들이었습니다. 배려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자라는 것이라는 것을, 준이를 통해 알았습니다.
공감 능력(Empathy)은 아이의 사회적 성공과 정서 건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직접적인 교육보다 다양한 타인과의 실제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합니다. 다름을 가진 친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경험이 준이의 공감 능력을 키운 가장 강력한 교육이었습니다. (출처: APA - Empathy Development in Child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