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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서 억울한 일 당했을 때 — 경청·개입·자립

by jamieseo1999 2026. 6. 12.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이가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돌아왔을 때, 부모 마음이 더 아픕니다. 당장 달려가서 해결해주고 싶기도 하고, 가만히 두면 또 같은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준이를 키우면서 그 경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억울하다고 느낀 날 준이가 꺼낸 이야기

준이가 3학년 때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그룹 활동을 시켰는데, 준이가 아이디어를 냈는데도 다른 아이가 발표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말은 듣지 않고 다른 친구 말만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많이 속상해했습니다.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화가 났습니다.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친구가 준이 아이디어를 가로챈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먼저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준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충분히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물었습니다. 준이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어?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아니면 그냥 넘어가고 싶어? 준이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때 이야기할게요. 스스로 판단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그날 준이가 집에 와서 오늘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룹 활동 때 자기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고 선생님에게 말했고, 선생님이 다음엔 발표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개입하지 않았는데, 준이 스스로 해결한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대견했습니다.

아동 발달 연구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모든 갈등에 개입하면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잃는다고 합니다. 먼저 듣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확인한 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장기적으로 아이의 자립심을 키웁니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과 기다려야 하는 순간을 구분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School Conflicts)

개입이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기다리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준이가 2학년 때, 한 친구가 반복적으로 준이를 놀이에서 빼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같은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준이가 점점 학교 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기다리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특정 아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준이가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린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빠르게 답해줬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그룹 활동을 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준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오늘은 괜찮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룹을 다시 짰고,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고, 그때는 망설이지 않은 것이 맞았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상황이 반복될 때는 부모가 개입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학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호주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주고, 반복되거나 심각한 상황이 될 때 부모가 개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개입의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너무 빨리 개입하면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을 빼앗고, 너무 늦게 개입하면 아이가 불필요하게 상처받습니다.

억울함을 다루는 방법을 함께 찾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준이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준이가 말했습니다. 일단 속으로 세어요. 하나, 둘, 셋. 그러면 조금 진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배운 건지 물었더니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했습니다. 화가 날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깐 멈추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준이가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속상하면 엄마한테 말해요. 그 말이 좋았습니다. 혼자 참는 것도 아니고, 바로 폭발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진정하고 나서 말하는 것. 그 방식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오래 영향을 미칩니다. 억울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면 쌓이고, 바로 폭발하면 관계가 힘들어집니다. 억울한 감정을 인정받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이 반복될 때 그 능력이 만들어집니다. 부모가 그 과정에서 먼저 들어주고,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그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었습니다.

정서 조절 능력(Emotional Regulation)은 어릴 때부터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발달합니다. 억울함, 분노, 좌절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연습이 쌓일 때 정서 조절 능력이 높아집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고,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 이 발달을 돕습니다.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가 그 연습의 기회입니다. (출처: APA - Emotional Regulation in Children)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일은 생깁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준이가 억울한 일 앞에서 멈추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능력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가 옆에서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지금 저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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