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숙제를 하는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너무 빠르게 끝나거나, 쓴 글이 평소 아이답지 않게 완벽하거나. 준이가 AI로 숙제를 하는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놀랐던 것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생각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이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의 장면
준이가 학교 과학 과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설명하는 글을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보니 준이가 AI 챗봇에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설명해줘라고 입력하고 있었습니다. 답이 나오자 그것을 읽고, 몇 문장을 골라서 자기 공책에 옮겨 쓰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처음 든 감정이 당혹감이었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정보를 옮겨 쓰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그 경계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왔습니다.
준이에게 바로 혼을 내거나 막지 않았습니다. 대신 옆에 앉아서 물어봤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준이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숙제 내용을 AI한테 물어봤어요. 그다음 질문이 중요했습니다. 근데 이 내용이 맞는지 어떻게 알아? 준이가 잠깐 멈췄습니다. 그냥 맞겠지 싶었어요. 그 대답에서 문제의 핵심이 보였습니다. 내용을 이해했는지, 맞는 정보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쓰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AI 생성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현대 교육에서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히 세부적인 사실 관계에서 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AI를 도구로 쓰되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습관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새로운 역할이 됐습니다. (출처: UNESCO - AI Competencies for Students)
AI 사용을 막지 않고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AI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준이의 학교 친구들도 많이 쓰고 있었고, 이것이 앞으로 일상이 될 도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였습니다.
그날 이후 준이와 AI 사용 규칙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AI가 준 내용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반드시 자기 말로 다시 쓴다.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은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확인한다. 세 번째, AI에게 설명해줘라고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엔 번거롭다고 했습니다. 그냥 AI가 써준 걸 쓰면 되는데 왜 다시 써야 하냐고. 그래서 직접 보여줬습니다. AI가 써준 문장을 그대로 과제에 냈을 때와,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말로 썼을 때의 차이를. 선생님은 어느 쪽이 준이가 실제로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준이가 후자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준이가 AI가 알려준 내용이 책이랑 다르다고 먼저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화산 과제를 할 때 AI가 설명한 내용과 도서관 책의 내용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발견이 반가웠습니다. AI를 그냥 믿지 않고 비교해보는 습관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작은 변화였지만 방향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연구에서는 정보를 소비할 때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관점과 비교하고,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합니다. AI가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환경에서 이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더 많은 오류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것과 비판적으로 쓰는 것은 함께 가야 합니다. (출처: ACARA - Critical and Creative Thinking)
AI가 못 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준이가 AI로 숙제를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오히려 AI가 줄 수 없는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AI가 화산에 대한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준이가 직접 실험을 하면서 느끼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AI가 글을 써줄 수는 있지만, 준이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표현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서 베이킹소다와 식초로 화산 실험을 했습니다. 준이가 직접 섞고, 터지는 것을 보고, 왜 그런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경험이 AI에게 물어봤을 때의 정보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이 지식이 되는 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AI를 쓰는 것이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구를 모른 채로 막기보다는, 함께 이해하고 올바른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준이가 AI를 쓸 줄 아는 것과, AI에게 생각을 빼앗기지 않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 이 시대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