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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사과한 날 달라진 것 — 용기·신뢰·관계

by jamieseo1999 2026. 6. 24.

아이와 화해하기
아이와 화해하기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모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준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던 날,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사과한 날

준이가 여섯 살 때였습니다. 제가 화가 난 상태에서 준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준이가 잘못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제가 지치고 스트레스받은 상태에서 그것이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준이가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준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준이가 눈이 빨개진 채로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크게 소리 질렀어. 준이가 잘못한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됐어. 미안해.

준이가 잠깐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나도 미안해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제가 사과하지 않았다면 준이도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나서 준이가 이불에서 나와 제 옆에 앉았습니다. 그날 이후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과(Parental Apology) 연구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 아이의 자존감과 부모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부모가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실수 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사과가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Apologising to Children)

사과 이후 달라진 것들

그날 이후 준이에게도 달라진 것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먼저 사과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예전엔 어른이 개입해야 미안해라는 말이 나왔는데, 스스로 먼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안이와 다퉜을 때도,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요. 부모가 먼저 보여줬기 때문에 사과가 자연스러운 것이 됐습니다.

그리고 준이가 저에게 더 솔직해졌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숨기거나 피하기보다, 먼저 말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엄마,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그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잘못을 인정했을 때 비난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사과하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듬어졌습니다. 처음엔 그냥 미안해만 했는데, 이후에는 왜 미안한지를 함께 말하게 됐습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크게 소리 질렀어. 엄마가 지쳐있어서 그랬는데, 그래도 그건 잘못된 거야. 다음엔 자리를 피했다가 말할게. 이렇게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를 말하는 것이 단순한 미안해보다 훨씬 깊이 닿았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는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는 항상 옳고, 잘못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 문화였습니다. 그 경험이 제가 처음 사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해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사과가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요.

사과가 가르쳐준 것들

준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먼저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갈등이 생긴 상황에서 준이가 자신의 잘못 부분을 인정하고 먼저 사과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에서 보여준 것들이 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모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고 자란 아이가,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됐습니다. 말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살아서 보여준 것이 닿은 것이었습니다.

사과하는 것이 아직도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치거나 억울한 마음이 있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사과가 더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먼저 문을 열어야 아이도 열 수 있습니다. 미안해라는 그 짧은 말이 관계를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라는 것을, 준이와 지안이를 키우면서 매번 다시 배웁니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이론에서는 진정한 사과가 세 가지를 포함한다고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는 것, 그것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공감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갖춰진 사과가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쌓습니다. (출처: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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