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실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것 같고, 아무것도 안 말하면 제 감정이 행동으로 새어 나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준이를 키우면서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실망을 숨기면 더 크게 나왔습니다
준이가 태권도 대회를 앞두고 한 달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저도 함께 응원하며 기대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대회 당일, 준이가 연습 때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 패턴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기대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잘했어라고 말했지만, 표정이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준이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엄마 실망했어요?
그 질문에 아니라고 하려다가 멈췄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잠깐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조금 아쉽긴 해. 준이가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준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건 진짜 잘한 거야. 준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아까보다 조금 편해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실망을 숨기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감정을 느낍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몸이 말하지 않으면 아이가 혼란스러워집니다. 말과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 옆에서 아이는 오히려 더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망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준이가 오히려 더 편안해 보인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쉽다고 말해줬을 때, 준이는 적어도 엄마의 감정이 뭔지 알게 됐습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덜 무섭습니다. 그리고 그 실망이 준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것이라는 것도 함께 전달됐습니다.
정서 표현 연구에서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아이에 대한 사랑과 분리해서 전달할 때 아이의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실망을 숨기는 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부모의 감정을 읽으면서 혼란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솔직한 감정 표현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Emotional Honesty in Parenting)
실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실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같은 실망이어도 표현 방식에 따라 아이에게 완전히 다르게 닿습니다.
준이가 약속을 어겼을 때가 있었습니다. 게임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정했는데, 타이머가 울려도 끄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럽다고 직접 말했는데, 그날은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엄마가 이렇게 실망한다는 걸 알아야 해, 라는 방식이었습니다. 실망을 도구로 쓴 것이었습니다. 준이는 위축됐고, 그 이후 타이머 주제만 나오면 긴장하는 모습이 생겼습니다.
그다음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는 다르게 했습니다. 타이머가 울렸는데 끄지 않았네. 엄마는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늘 준이가 그걸 지키지 않아서 아쉬워.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비난 없이, 제 감정을 표현하고, 다음을 물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준이가 다음엔 타이머 울리면 바로 끌게요라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두 가지 방식의 차이는 실망이 관계를 향하느냐, 행동을 향하느냐에 있었습니다. 네가 실망스럽다는 것과 이 상황이 아쉽다는 것은 아이에게 전혀 다르게 닿습니다. 전자는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후자는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됩니다. 실망을 표현할 때 그 구분이 핵심이었습니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이론에서는 감정과 판단을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쉬워, 라는 감정 표현은 상대를 탓하지 않습니다. 반면 너 때문에 실망했어, 는 상대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입니다. 아이에게 실망을 표현할 때도 이 구분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출처: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실망 이후 회복이 관계를 만듭니다
실망을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그 이후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태권도 대회에서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아쉽다고 말한 후에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준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짜였기 때문에 준이에게 닿았을 겁니다.
준이가 숙제를 빠뜨리고 간 날, 실망스럽다고 했다가 그 이후 같이 내일은 어떻게 챙길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준이가 가방 확인 체크리스트를 만들자고 스스로 제안했습니다. 실망이 처벌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실망했다는 것을 표현하되, 그것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제가 찾은 균형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실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관계를 흔들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하는 것입니다. 실망해도 여전히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