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 어땠어? 라고 물으면 그냥요, 별로요, 몰라요로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더 이야기하려고 하면 오히려 입을 닫습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하려는 아이와 대화가 막히는 그 느낌, 부모라면 한번쯤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저도 그랬고, 그 막힌 대화를 다시 여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직접 물을수록 닫혔습니다
준이가 8살 무렵, 학교에서 뭔가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표정이 평소와 달랐고, 말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친구랑 싸웠어?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한테 혼났어?라고 물으니 그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음표가 쌓일수록 준이는 더 닫혔습니다.
그날 저녁 억지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멈췄습니다. 그냥 밥을 같이 먹고,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줬습니다. 책을 읽다가 비슷한 상황이 나오는 장면에서 준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친구가 자기를 놀이에서 빼버렸다고. 물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준비됐을 때 스스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직접 묻는 것이 때로는 오히려 대화를 막는다는 것을. 준비가 안 됐을 때 질문을 받으면 더 닫히게 됩니다. 열릴 준비가 됐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동 심리학에서는 아이가 감정적으로 준비됐을 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대화를 강요하거나 직접적으로 질문할 때 아이는 방어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부모가 그냥 함께 있을 때 아이가 더 쉽게 마음을 엽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Communication with Children)
걷는 중에, 차 안에서, 잠자리에서 열렸습니다
준이와 대화가 가장 잘 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할 때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히려 편한 것 같습니다.
차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태권도를 데려다주거나 데려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니 대화를 피할 수도 없고, 함께 앞을 보고 있으니 부담이 적습니다. 그 짧은 이동 시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친구 이야기,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나왔습니다.
잠자리도 중요합니다. 불을 끄고 책을 읽다가, 혹은 책을 덮고 조용히 누워있다가 준이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조용한 그 시간이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자리 시간을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환경이 대화를 만든다는 것을 준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이야기하느냐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만큼 중요합니다. 편안하고 압박이 없는 환경에서 아이는 더 쉽게 마음을 엽니다.
대화가 막혔을 때 제가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준이가 말을 안 하려고 할 때, 제가 먼저 이야기하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엄마는 이런 일이 있었어. 회사에서 이런 것이 어려웠어. 준이한테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렇게 먼저 꺼내면 준이가 그래요?라고 반응하고, 그 반응이 대화의 시작이 됩니다.
제가 먼저 일상을 나누면, 준이도 자신의 일상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그 방식을 통해 실천하게 됐습니다. 어른이 먼저 열면 아이도 열립니다.
대화가 막히는 것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 아이가 준비됐을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부모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 그 세 가지가 막힌 대화를 다시 여는 방법이었습니다. 완벽하게 되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 방향을 알고 있으면 다시 시도할 수 있습니다.
부모-자녀 소통(Parent-Child Communication) 연구에서는 강요된 대화보다 자연스러운 맥락에서의 대화가 아이의 개방성을 높인다고 합니다. 특히 이동 중, 일상적인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대화가 공식적인 대화 자리보다 더 많은 것을 끌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의 내용보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맥락이 먼저입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Communication Ti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