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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꿈을 대하는 법고고학자, 태권도 사범, 쓰레기 연구학자 — 다 괜찮습니다

by jamieseo1999 2026. 4. 15.

아이들의 각기 다른 꿈
아이의 꿈을 대하는 자세

아이의 꿈을 대하는 법

 

고고학자, 태권도 사범, 쓰레기 연구학자 — 다 괜찮습니다
준이가 처음 고생물학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저는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공룡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였으니 그 꿈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과거를 연구하는 직업이 맞을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건 정말 좋은데, 미래를 연구하는 과학자도 멋있지 않겠냐고요. 아이는 제 말을 듣더니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고생물학자 할 거예요."
그러고는 얼마 뒤, 고생물학으로 유명한 미국 대학들을 스스로 검색해서 제게 보여줬습니다. 어느 대학 프로그램이 좋다더라, 거기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더라.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머쓱해졌습니다. 아이는 설득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응원이 필요했던 겁니다.


꿈이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준이의 꿈 목록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생물학자, 태권도 사범, 쓰레기 연구학자. 처음 쓰레기 연구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 설명을 들어보니 나름 진지했습니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니까 그걸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의 꿈 목록이 다양하다는 건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 나이에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의 꿈은 하나로 정해져야 하고 그걸 향해 일찍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꿈이 많은 아이가 꿈이 없는 아이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어느 쪽이 더 건강한 출발점인지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외할머니의 한마디,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


준이는 그림도 잘 그립니다. 외할머니, 그러니까 제 어머니께서 그걸 보시고 화가의 길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손자가 그림을 잘 그리니 자연스럽게 나온 말씀이었겠지요.
그런데 저와 남편은 솔직히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그림으로 직업을 삼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취미로 평생 즐길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이 부분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아이의 가능성을 제 기준으로 먼저 걸러내고 있던 건 아닐까. 고생물학자는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화가는 취미 정도로 선을 그어버린 것도 결국 제 판단이었으니까요. 아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사이에서, 저는 늘 균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호주, 꿈을 대하는 온도가 다릅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아이의 꿈도 그 경쟁 구도 안에서 현실적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꿈으로 먹고살 수 있겠어?'라는 질문이 꽤 이른 시점에 등장합니다.
호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경쟁보다는 삶을 즐겨야 한다는 태도가 강합니다. 아이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해보라는 분위기입니다. 처음엔 그게 좋아 보였는데, 오래 살다 보니 이쪽도 마냥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너무 릴렉스한 환경이 아이에게 동기 자체를 만들어주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어느 한쪽이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식의 동기와 추진력, 호주식의 여유와 자기 존중.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균형점이 있을 텐데, 그걸 찾는 게 지금 저의 숙제입니다.
여기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라는 개념을 잠깐 짚고 싶습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내면에서 동기가 생긴다고 합니다. 아이의 꿈을 부모가 대신 정해주거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꺾어버리면, 이 세 가지 중 자율성이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꿈의 내용보다 꿈을 갖는 과정 자체를 지켜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준이의 꿈 목록이 계속 늘어나길 바랍니다


고생물학자, 태권도 사범, 쓰레기 연구학자. 내년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추가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게 기대됩니다. 어떤 꿈을 가져오더라도 일단 들어줄 준비가 됐습니다. 미래 과학자를 권유했다가 머쓱해진 그날 이후로, 저는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대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꿈은 부모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는 걸, 준이가 저에게 가르쳐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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