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싸움을 아이 앞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크게 다퉜습니다. 아이들이 그 장면을 봤고, 저는 자책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싸운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였습니다. 남편과 아이들 과외 활동 일정 때문에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준이의 태권도와 피아노, 지안이의 발레까지 겹치는 날이 있었는데, 누가 어떻게 데려다줄지를 두고 쌓였던 것이 터졌습니다. 처음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다가, 서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준이와 지안이가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준이가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안이는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저 모두 멈췄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아이들에게 갔습니다. 남편은 준이에게, 저는 지안이에게. 지안이를 안아주면서 괜찮아, 엄마 아빠가 잠깐 큰 소리로 이야기했는데 지안이 무서웠지?라고 했습니다. 지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습니다.
그날 밤 준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준이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제가 들어오자 책을 내려놨습니다. 엄마 아빠가 오늘 크게 싸웠지. 준이 놀랐겠다라고 했습니다. 준이가 잠깐 있다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이혼해요?" 그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아니, 이혼 안 해. 의견이 달라서 싸운 거야. 엄마 아빠 사이는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준이가 그렇구나 하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화해했어요?" 아직이라고 했습니다. 준이가 빨리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뭉클했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다시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싸운 것보다 화해하지 않은 것이 더 불안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남편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화해했습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어. 남편도 나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준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습니다. 이제 됐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부부 갈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갈등 자체보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더 많이 달려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다투는 것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불안을 줄 수 있지만, 그 이후에 화해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오히려 갈등 해결 방식을 가르치는 기회가 됩니다. 싸움이 끝이 아니라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Effects of Conflict on Children)
예상 밖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날 이후 준이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편과 제가 의견이 달라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 준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지금 싸우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질문이 처음엔 귀여웠는데, 생각해보니 준이가 두 가지를 구분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큰 소리가 나도 싸움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이가 지안이와 다툴 때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싸운 후에 스스로 먼저 다가가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예전엔 어른이 개입해야 사과가 나왔는데, 스스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화해하는 모습을 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가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지안이도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이야기를 나눌 때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면 지안이가 와서 손을 잡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 행동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동시에 지안이가 그 방식으로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안이가 그럴 때는 잠깐 멈추고 지안이를 안아줍니다. 괜찮아, 엄마 아빠 이야기하는 거야. 그 확인이 지안이를 안심시킵니다.
사회학습이론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배운다고 합니다. 갈등 후 회복하는 부모의 모습, 사과하는 부모의 모습,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게 그 방식을 가르칩니다. 부부싸움이 나쁜 것이지만, 그 이후를 어떻게 하느냐가 오히려 중요한 교육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배웠습니다. (출처: Simply Psychology - Bandura Social Learning Theory)
아이들 앞에서 화해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과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싸웠으면, 아이들 앞에서 화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해결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미안해, 괜찮아를 나누는 것입니다.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서로 사과하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준이가 그때마다 눈에 띄게 안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는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방에 들어가 모른 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화해하는 모습은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 경험이 갈등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는 감각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준이에게는 갈등 후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싸워도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요.
물론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싸운 이후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것,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불안해한다면 그 감정을 받아주는 것. 그 세 가지가 부부 갈등이 아이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동 발달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갈등 해결 방식이 아이의 사회적 능력과 정서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건설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부모의 자녀들이 또래 관계에서 갈등을 더 잘 해결하고, 감정 조절 능력도 높다고 합니다. 부부가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아이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됩니다. (출처: APA - Marital Conflict and Child Develop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