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아이 앞에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해 보여야 한다고, 아이가 불안해할 수 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가 그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날
지안이가 두 살쯤 됐을 때였습니다.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가 갑자기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호주에서 당장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혼자 울려고 했는데, 준이가 아직 잠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눈물을 닦으려는 순간 준이가 봤습니다.
"엄마 왜 울어요?" 당황했습니다. 괜찮다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순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걱정돼서 울었어." 준이가 잠깐 가만히 있더니 제 옆에 와서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홉 살 아이가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는 것을. 제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스스로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것이 꼭 옳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부모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아이는 감정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함께 봅니다.
정서 발달 연구에서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의 정서 인식 능력과 공감 능력이 함께 발달한다고 합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 있습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Emotion Coaching)
아이도 위로받고 싶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준이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제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솔직하게 말합니다. 엄마 오늘 많이 지쳐있어. 준이가 그 말을 들으면 알겠다는 듯 행동이 달라집니다. 더 조용히 있거나, 먼저 도움을 자청하기도 합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준이도 감정 표현이 자유로워졌습니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말합니다. 오늘 친구가 이래서 속상했어요. 예전엔 그냥 모르는 척 넘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감정을 말로 꺼냅니다. 부모가 먼저 감정을 표현하니 아이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물론 모든 감정을 아이 앞에서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감정이나, 아이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조절이 필요합니다. 다만 슬프다, 걱정된다, 피곤하다 같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이에게 감정이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도요.
한국에서 자란 저는 어른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함으로 보이는 문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부모가 아이 앞에서 우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살면서, 그리고 준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을요.
공감 능력(Empathy)은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높은 공감 능력을 갖게 됩니다. 준이가 제 손을 잡아줬던 그 행동이, 그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출처: Zero to Three - Emotional Development)
울어도 괜찮은 부모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 앞에서 감정을 완전히 숨기려는 시도를 그만뒀습니다. 슬플 때 슬프다고, 걱정될 때 걱정된다고, 기쁠 때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 감정들이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됩니다.
지안이가 제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엄마 아파요?라고 물었습니다. 아프지 않고 슬픈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안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제 볼에 뽀뽀를 했습니다. 네 살짜리가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면, 가족 안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을 보고 자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슬픔도 있고 지침도 있고 걱정도 있습니다. 그 감정들을 숨기는 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준이와 지안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울어도 괜찮은 부모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