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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노출입니다환경, 한국어 균형, 자연 습득의 경험

by jamieseo1999 2026. 5. 4.

영어로 공부하는 학생들
영어를 사용하는 언어환경

준이 친구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그 아이는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국어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부모님 모두 한국 사람이고, 주변에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많다 보니 영어를 쓸 일이 없었던 겁니다. 그 친구 부모님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봐서요.

 

그런데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매일 영어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다 보니 영어가 금방 늘었습니다. 준이와 만날 때 항상 한국어로 대화하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영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해 보입니다. 언어는 환경이 만든다는 걸 그 아이를 보며 실감했습니다.

 

반대로 저는 한국어 때문에 고민입니다

 

준이 친구의 사례가 인상 깊은 이유는 저와 정반대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준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준이가 만 5세까지만 해도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한국어 책도 많이 읽어줬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달라졌습니다. 영어로 쌓이는 지식이 빠르게 늘다 보니, 한국어 발달 속도는 그에 비해 많이 더뎌졌습니다. 한국어 학교에도 보내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의 수업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전에 알던 단어도 잊어버리고, 영어로 읽기 독립이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혼자 책을 읽느라 저와 함께 한국어 책을 읽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솔직히 후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한글을 미리 더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준이 아빠의 모국어가 영어이다 보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영어가 먼저입니다. 한국어로 말을 시켜도 영어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족을 방문하고 오면 한국어가 눈에 띄게 늡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언어가 달라진다는 걸, 그때마다 확인합니다.

 

언어 습득 연구에서는 이를 몰입 효과(Immersion Effect)라고 설명합니다. 언어는 의식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그 언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때 가장 빠르게 습득됩니다. 준이 친구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가 폭발적으로 는 것, 준이가 한국 방문 후 한국어가 느는 것이 모두 같은 원리입니다. (출처: Krashen, S., The Input Hypothesis, Longman)

 

저도 호주에서 영어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사실 저 자신의 경험이 가장 솔직한 증거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인 채로 호주에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 한국 유학원에서 일할 때만 해도 영어가 큰 벽이었습니다. 간단한 이메일 하나를 쓸 때도 남편에게 검토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험 영어는 어느 정도 됐지만, 실제로 쓰는 영어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매일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다 보니 빠르게 늘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 호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었는데, 전화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긴장됐지만 반복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습니다. 억지로 외운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상황이 저를 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호주에 살면서도 영어가 늘지 않아 고생하는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영어에 관심이 없거나, 한국인들과만 교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같은 나라에 살아도 어떤 환경 속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어 학원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환경이 만들어주는 자연스러운 노출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해 제가 비판적으로 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어 유치원, 원어민 학원, 화상 영어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데, 결국 아이가 영어를 실제로 써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과 영어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영어 교육 전문가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억지로 시키는 교육이 가장 나쁜 방식이고, 아이가 영어를 즐거운 것으로 느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들의 특징이 정답에 매여 있지 않고 주저함 없이 영어를 사용하려는 태도라고 합니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그 태도는 학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영어를 써도 괜찮다는 경험이 쌓일 때 생깁니다. (출처: Common Sense Media)

 

결국 언어는 삶 속에서 배웁니다

 

준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그리고 제가 호주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언어는 공부해서 느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안에서 살아야 늡니다. 준이 친구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가 폭발적으로 는 것도, 제가 전화 상담을 반복하며 영어가 늘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환경이 없다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준이의 한국어를 위해 한국어 책을 찾아 읽어주고,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는 것. 그게 학원 한 곳을 더 보내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교육 전문가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아이와 함께 책을 더 많이 읽어주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준이와 한국어 책을 더 많이 읽어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국어 책을 더 자주 꺼내려 합니다. 언어는 늦게 시작해도 환경이 만들어지면 반드시 늡니다. 그 믿음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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