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육아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아이를 책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압박감으로 시도했던 방법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흑역사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독서량을 채우려다 생긴 일
준이가 다섯 살 무렵, 또래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매일 몇 권을 읽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루에 다섯 권. 그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표가 됐습니다. 준이가 한 권을 다 읽으면 자, 다음 책이라며 빠르게 다음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준이가 책 읽는 시간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라고 하면 다른 놀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기분이 안 좋은 날인가 했는데, 그것이 반복됐습니다. 준이에게 왜 책 읽기 싫어?라고 물었더니 준이가 말했습니다. 빨리빨리 넘어가야 해서 싫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독서량을 채우려는 욕심이 준이에게 책을 의무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항상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어, 주인공이 어떻게 했어. 책 읽기가 끝나면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구조였습니다. 준이 입장에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평가받는 시간이었던 겁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강요된 독서(Forced Reading)는 단기적으로 독서량을 늘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책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독서를 즐거움이 아닌 의무로 경험한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책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독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양을 채우려는 접근이 가장 흔한 실패 원인 중 하나입니다. (출처: National Literacy Trust - Reading for Pleasure)
레벨에 집착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리딩 레벨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또래보다 준이의 레벨이 낮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 다른 흑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레벨에 맞는, 혹은 그보다 높은 책을 억지로 읽히려고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준이가 좋아하는 쉬운 그림책 대신, 글이 많은 챕터북을 골라왔습니다.
준이는 그 책들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펼쳐도 몇 페이지 못 가서 덮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조금만 더 읽어보자며 다시 펼치게 했습니다. 그 과정이 매일 저녁 작은 전쟁이 됐습니다. 결국 준이가 책 자체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레벨을 올리려다가 독서 자체를 잃을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며 가장 후회되는 것은, 준이가 정말 원했던 것을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준이는 그 무렵 공룡 책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같은 공룡 도감을 몇 번이고 다시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레벨에 맞지 않는다고, 같은 책만 보면 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반복이야말로 준이가 가장 깊이 몰입하고 있던 학습이었는데,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책, 심지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독서 발달에 부정적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반복 독서는 어휘력과 이해력을 깊게 다지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레벨이나 양보다 아이가 그 책과 맺는 관계의 깊이가 더 중요합니다. (출처: Reading Rockets - Repeated Reading Benefits)
흑역사를 거치고 나서 바뀐 것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독서 교육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양보다 질, 레벨보다 흥미, 평가보다 즐거움. 그 방향으로 바꾸고 나서야 준이가 다시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준이가 원하는 만큼 가져오게 했습니다. 책을 읽은 후 내용을 확인하는 시험 같은 질문도 멈췄습니다. 그냥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보는 정도로 가볍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준이가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강요받지 않으니 오히려 더 많이 나눴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흑역사들이 부끄럽지만, 그 시행착오를 통해 진짜 독서 교육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독서는 채워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이라는 것을요. 책육아라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창한 교육이 아니라, 그냥 책이 좋은 것이 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생각하는 책육아의 전부입니다.
다른 부모들에게 이 흑역사를 나누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멈추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입니다. 독서량을 채우려는 욕심, 레벨에 대한 집착, 평가하듯 묻는 질문들. 그것들이 의도와 다르게 아이를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