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둘째 아이에게 첫째만큼 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두 아이의 독서 태도 차이로 나타났고, 이것이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첫째에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어줬고, 책으로 집을 짓든 다리를 만들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는 달랐습니다. 일과 집안일에 쫓기면서 자연스럽게 기대치가 바뀌었고, 첫째가 혼자 책을 읽어내길 바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첫째의 독서 시간은 예전보다 짧아졌고, 둘째는 첫째에 비해 독서 흥미가 현저히 낮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아이의 독서 교육에서 부모의 태도와 관계가 얼마나 결정적인지였습니다.
초등 저학년, 읽기 독립보다 중요한 것
독서 발달 이론에서는 초등 1~2학년을 '독서 준비기(reading readiness period)'로 분류합니다. 여기서 독서 준비기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준비를 하는 단계로, 아직 혼자 읽기보다는 부모가 읽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시기를 의미합니다. 본격적인 독립 독서기는 초등 3학년부터 시작되며, 이 시기 안에만 읽기 독립이 이루어지면 충분합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많은 부모들이 초등 1학년만 되면 "이제 혼자 읽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첫째가 네 살이 됐을 때 강제적으로 읽기를 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 독립을 빨리 시키려면 '읽기 자동화(reading automaticity)'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눈만 대면 저절로 글자가 읽히는 수준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려면 소리 내어 읽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지나치면 아이는 책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실제로 읽기 독립을 빨리 한 아이와 늦게 한 아이의 문해력을 비교한 결과, 초등 고학년이 됐을 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압박으로 빨리 독립한 경우 독서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져 장기적으로 문해력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마라톤 출발 전 준비운동 단계에서 전력 질주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지쳐버리는 것이죠.
제가 첫째를 키우면서 가장 잘한 것은 아이가 책으로 노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는 점입니다. 책을 징검다리로 만들든, 성을 쌓든 치우는 데 온종일 걸려도 말없이 지켜봤습니다. 그저 아이가 책과 친구가 되길 바랐고, 그 결과 아이는 공룡 책이라면 한참을 붙들고 앉아있을 만큼 독서를 즐기게 됐습니다.
균형 잡힌 독서라는 함정
한국 사회에서 독서 지도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이 '독서 문화'를 만들어야 할 곳인데 '독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균형 잡힌 독서를 해야 한다", "수준 높은 책을 읽어야 독서 능력이 향상된다"는 생각은 모두 독서 교육적 관점입니다. 이런 접근은 독서를 실패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균형 잡힌 독서란 결국 "네가 재미있는 책만 읽으면 안 된다, 재미없는 책도 읽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는 매우 이상한 얘기입니다. 재미없는 책을 왜 읽어야 합니까? 재미없는 책을 읽게 되는 순간 독서의 동력이 사라집니다.
제 첫째 아이는 공룡에만 몰입했습니다. 공룡 학자를 꿈꿀 정도로 관련 책만 읽었죠. 저도 처음에는 다른 분야에도 흥미를 가졌으면 해서 여러 책을 가져다 줬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옳았습니다. 만약 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공룡 책 읽기를 방해했다면 아이는 독서 자체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었을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찔한 일입니다.
독서의 가장 기본 원칙은 책 선택권이 책을 읽는 아이에게 있느냐입니다. 이것 없이는 독서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균형 잡힌 독서는 교사가 커리큘럼을 짤 때 고려할 사항이지, 가정에서 아이에게 강요할 원칙이 아닙니다. 커리큘럼을 균형 있게 짜면 어떤 책은 재밌고 어떤 책은 재미없는 상황이 아이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독서에는 커리큘럼이 없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은 학생 시절 독서량이 많지만 성인이 되면 독서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나라입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조사). 이는 어린 시절의 지나친 독서 교육, 정확히는 가정에서 독서 문화 대신 독서 교육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선택권을 빼앗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순간, 독서는 의무가 되고 즐거움은 사라집니다.
관계가 만드는 독서의 동력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제 아이들을 키워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입니다. 문해력도 아니고, 학습량도 아닙니다. 이 관계만 좋으면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아갑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어릴 때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시켜서 우등생이 된 아이가 중학교 2~3학년에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제자는 중3 때 폴더폰을 부숴 던지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일주일간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쉬는 날까지 정해서 수요일 오후는 수영하는 날 식으로 스케줄을 빡빡하게 관리했는데, 이것이 원한으로 쌓인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기질을 가진 아이일수록 "나는 공부하는 기계인가?"라는 회의감을 느끼고, 그것이 극단적인 반항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는 자꾸 해보려고 합니다. 고민이 생기면 부모와 얘기하고, 정서적 동력이 생깁니다. 저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갑니다. 70L 등산 배낭을 메고 가서 대출 한도를 꽉 채워 60권을 빌려오죠.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각자 책을 읽습니다. 저희 집 헌법 1조 1항은 "책 읽는 놈이 왕이다"입니다. 누군가 책을 읽고 있으면 나머지는 조용히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주 5일 매일 독서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녁에 꼭 무슨 일이 생기기 때문에 많이 읽어도 주 3일, 적게 읽으면 주 1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끊기지 않는 것입니다. 독서 시간에 재밌는 책을 만나면 다음 날 아침에도 엎드려서 읽고 있고, 재미없는 책이었으면 안 읽습니다. 이 사이클을 계속 타면서 아이는 스스로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책 대화를 해보면 "우리 아이가 이런 생각을?"이라는 놀라움을 느낍니다. 평소에는 "시험 몇 점 나왔어?", "왜 편식하니?" 같은 일상적인 대화만 하지만, 책 대화는 다릅니다.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게 됩니다. 제 첫째는 자전거 역사책을 읽고 한 시간 반 동안 그 내용을 얘기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가끔 제게 책을 건네며 "며칠까지 읽어"라고 합니다. 심지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같은 철학책도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눕니다.
결국 초등 때 학습을 얼마나 잘했느냐와 중·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느냐는 별 연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뒤늦게 동력이 생긴 아이, 문해력을 갖춘 아이가 마음을 먹으면 순식간에 따라잡습니다. 지적 능력은 정서 능력의 시녀일 뿐입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가 마음을 먹으면 지적 능력은 그 행위에 의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둘째에게 첫째만큼 책을 읽어주지 못한 것이 제 가장 큰 후회입니다. 하지만 이 후회를 통해 배운 것은, 독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나 양이 아니라 아이가 책 읽는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둘째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냐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