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준이가 학습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 앞에서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옆에서 잠자코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말했습니다. "너는 항상 그래. 그렇게 쉬운 문제를 왜 못 풀어. 얼른 해. 못하면 오늘 게임은 없어."
준이 얼굴이 굳었습니다. 짜증이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말리고 싶었지만, 아이 앞에서 부부가 충돌하는 게 더 좋지 않을 것 같아 참았습니다. 그날 밤 남편에게 따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에게 "항상"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위협은 더더욱 안 된다고.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지 않냐고,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과 감정을 헤아리는 것
저와 남편의 차이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남편은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사실을 중시하고, 그에 기반해 아이들과 대화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이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바로 따지고 나무랍니다. 아이니까 모를 수 있다는 여지를 잘 두지 않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육아 관련 책과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아이의 감정을 먼저 돌보려고 애씁니다. 비교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아이가 틀린 말을 해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먼저 들으려 합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9살 아이에게는 사실의 정확성보다 감정이 수용되는 경험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을 바로잡기 전에, 지금 이 아이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봐야 한다고요. 그 부분에서 남편과 저는 자주 부딪힙니다.
여기서 정서코칭(Emotion Coaching)이라는 개념을 짚고 싶습니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함께 다루는 정서코칭 방식으로 양육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학업 성취도, 또래 관계, 정서 안정성이 모두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감정을 무시하거나 즉각적으로 교정하려는 방식은 아이의 자존감과 감정 조절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너는 항상 그래"가 아이에게 하는 일
남편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는 항상 그래." 특히 첫째 준이에게 더 자주 씁니다. 아들이라서 더 엄격하게 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항상"이라는 단어는 아이에게 매우 강하게 작용합니다. 한 번의 실수를 자신의 전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라고 부릅니다. 특정 상황의 실수를 "나는 항상 이런 아이"라는 자기 정체성으로 굳혀버리는 인지 왜곡입니다. 어른도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자존감이 흔들립니다. 아이는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최근 들어 준이가 화를 쉽게 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4살짜리 동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다 짜증을 낼 때, 그 말투가 남편과 너무 흡사합니다. "너는 왜 항상 이래. 그것도 몰라?"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이는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Albert Bandura의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 따르면, 아이는 주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학습합니다. 특히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모델입니다. 부모가 화를 내는 방식, 말하는 방식,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아이는 고스란히 흡수합니다. 준이가 동생에게 하는 말이 남편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이론이 우리 집 안방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출처: Simply Psychology)
남편을 원망하다가 깨달은 것
솔직히 말하면, 저는 남편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아이니까 모자랄 수 있고, 아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걸 헤아려주지 못하는 남편이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몇 번이나 주의를 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남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돌아봐야 했습니다. 남편에게 화가 난 감정을 아이 앞에서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편을 설득하려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부가 육아 방식으로 충돌하는 장면 자체가 아이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 간의 갈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이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옳더라도, 그 옳음을 아이 앞에서 싸우며 증명하는 방식은 아이에게 득이 되지 않습니다. (출처: Child Development Research)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남편과 저의 육아 방식은 완전히 맞춰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가끔 "항상"이라는 말을 씁니다. 저는 여전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 앞에서 바로 충돌하지 않으려 합니다. 남편이 준이에게 강하게 말할 때, 저는 그 자리에서 말리는 대신 나중에 따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비난 대신 구체적인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항상이라는 말 대신 이번에는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라고.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맞는 부부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방향을 맞춰가는 과정, 그게 육아의 또 다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