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해야 할까요? 어릴 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가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이에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부모가 먼저 사과할 때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처음 아이에게 사과했던 날
준이가 세 살 때였습니다. 낮잠을 재우려고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아이가 갑자기 스쿠터를 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30분 넘게 달래다 겨우 나온 터라 이미 화가 올라올 대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나무라며 문을 쾅 닫으려는 순간, 울면서 뛰어온 준이의 새끼손가락이 문틈에 끼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뼈는 다행히 괜찮았지만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손톱에 멍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셀 수 없이 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내 화 때문에 아이를 다치게 했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그때 다친 손톱은 지금도 모양이 조금 어그러져 있습니다. 아기 때 일인데 준이는 그걸 기억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말을 반복할 때마다, 준이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엄마도 실수한다는 것, 그리고 실수했을 때 인정한다는 것을 아이가 배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의 사과가 아이의 자존감과 정서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아이는 실수가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고 강조합니다. 그날 제가 한 사과가, 준이에게 그것을 가르쳐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Repair Attempts)
사과가 부모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오해
한국에서 자란 저는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권위를 잃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였습니다. 부모는 늘 옳아야 했고, 틀렸더라도 그것을 아이에게 드러내는 것은 약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살면서 다른 모습을 봤습니다. 호주 부모들은 아이에게 비교적 쉽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사과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과가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쌓는다는 것을, 준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제가 잘못했을 때 인정하면, 준이도 자신의 잘못을 더 쉽게 인정합니다. 엄마가 먼저 보여주는 모습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사과 이후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제가 화를 낸 후 사과하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미안해"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왜 엄마가 미안한지 이해하지 못하면, 사과가 그냥 지나가는 말이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꿨습니다. "엄마가 화를 너무 크게 냈어. 그건 잘못됐어. 준이가 속상했겠다." 행동을 구체적으로 짚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면 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이 달랐습니다. 단순한 미안함이 아니라, 엄마가 진짜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줬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과 이후에 준이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동생 지안이에게도 그렇습니다. 장난감을 빼앗았다가 지안이가 울면, 예전에는 모른 척했는데 요즘은 "미안해 지안아"라고 먼저 말합니다. 부모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스스로도 그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로 가르친 게 아니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배운다고 설명합니다. 부모가 사과하는 모습,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됩니다. 준이가 지안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장면이, 그 이론이 우리 집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출처: Simply Psychology - Bandura Social Learning Theory)
부모가 먼저 사과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그 어색함 자체가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실수했을 때 인정하는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