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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행복, 자연이 진짜 선행학습입니다 - 교사 36년 경력이 말하는 아이 교육의 본질

by jamieseo1999 2026. 4. 30.

자연과 함께 하는 육아
자연속에서 노는 아이

준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 저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인성이라는 것. 학과목 선행은 학원이나 과외로 채울 수 있지만, 인성 교육은 오로지 가정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보다 태도를 먼저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다 보니,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침대 정리 하나로 시작한 인성 교육

 

시부모님이 집에 오시거나 돌아가실 때, 저는 TV를 보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인사를 시킵니다. 밖에서 어른을 마주칠 때도, 친구 부모님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인사를 잊으면 조용히 상기시켜 줍니다. 매번 챙기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걸 빠뜨리면 아이가 배울 기회를 잃는다는 생각에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정리정돈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한동안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준이가 9살이 될 때까지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제가 일일이 다 챙겨줬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고. 처음엔 반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다 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막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침대 정리, 그다음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 안 물건 정리. 처음에는 버거워했지만 습관이 되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식사 시간에 테이블 세팅을 돕고, 요리를 함께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육아는 결국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키워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더 분명해집니다.

 

36년 경력의 초등교사 최순나 선생님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진짜 선행학습은 수학 한 단원을 미리 떼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 인사할 줄 아는 아이, 정리정돈이 되는 아이라고. 이 기본이 갖춰진 아이가 학교에서 진짜 배움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영어유치원, 사고력 수학학원이 인사 한 번보다 먼저 거론됩니다. 기본이 빠진 선행학습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아이가 내면에서 동기를 갖고 행동하려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침대 정리 하나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키웁니다. 스스로 해냈다는 유능감, 가족을 위해 기여하는 관계성, 스스로 선택하는 자율성. 학습지 한 장보다 침대 정리 한 번이 아이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엄마가 지쳐있으면 아이도 압니다

 

한동안 저는 거의 매일 지쳐있었습니다. 준이는 태권도, 수영, 피아노, 구몬 학습지를 하고 있었고, 태권도는 일주일에 서너 번 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거기다 둘째가 발레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 활동이 한꺼번에 늘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아이들 라이딩까지 맞추려니, 일정을 몰아서 배치해도 체력적으로 먼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다 피아노와 수영 선생님께 사정이 생겨 두세 달 쉬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 일정에 공백이 생기는 게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유가 생기자 피곤함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수 있는 날이 늘었습니다. 아이들 표정도 달라졌습니다.

 

그 시기에 준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요즘 많이 웃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전에 제가 얼마나 여유 없이 지냈는지가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피곤하면 먼저 알아챕니다. 제가 지쳐있을 때는 아프냐며 걱정해서 물어본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하고 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하되, 부모도 버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고. 채워주는 것만큼 비워두는 것도 육아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최순나 선생님은 학부모 교육의 핵심이 "엄마가 먼저 행복하자"라고 말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교육비에 과도하게 지출하며 노후를 희생하지만, 정작 아이가 그 희생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제가 몸으로 겪은 것과 정확히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지쳐서 짜증을 내는 부모 곁에 있는 아이보다, 여유 있게 함께 웃는 부모 곁에 있는 아이가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건 경험으로 압니다.

 

부모의 정서적 가용성(Parental Emotional Availability)이란 부모가 아이의 감정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따뜻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를 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정서적 가용성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 조절 능력과 사회적 유능감이 높게 나타납니다. 부모가 지쳐있으면 이 가용성이 낮아지고, 아이는 그 공백을 불안으로 채웁니다. (출처: American Journal of Orthopsychiatry)

 

자연, 책, 움직임 — 돈 들이지 않고 매일 누립니다

 

저는 집 안 곳곳에 책을 둡니다. 어디를 가든 책이 있는 집이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잠자리 독서도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토요일 오전에는 둘째 발레 수업과 첫째 학습지가 끝나면 도서관에 함께 갑니다. 책을 읽든, 게임을 하든 책이 둘러싸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놀이터나 공원에 걸어서 갑니다. 걷는 동안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집에서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보다 걷는 동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호주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자연입니다. 나뭇잎 색깔이 계절마다 바뀌는 것을 보고, 하늘을 나는 형형색색의 새들을 보고, 가끔은 코알라를 마주칩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비용이 들지 않아도,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험이 됩니다.

 

반면 한국에서 육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주말에 놀이공원이나 키즈카페에 가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할 이야기가 없어 의기소침해진다고 합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외출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과연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최순나 선생님은 가정 문화 안에 자연, 책, 움직임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루 100분 이상 야외에서 뛰어노는 것이 체력과 면역력, 나아가 배움의 힘을 키운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호주에서 이게 어렵지 않게 실천된다는 걸 압니다.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가 의식적으로 그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놀이(Nature Play)가 아이의 창의성, 집중력, 스트레스 조절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다수의 연구에서 입증되어 있습니다. 특히 비구조화된 야외 활동은 아이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을 발달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실행 기능이란 계획하고, 집중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능력으로, 학업 성취와 사회성 모두에 영향을 미칩니다. 학원 한 곳을 더 보내는 것보다, 밖에서 한 시간 뛰어노는 것이 아이의 뇌 발달에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출처: Association of Nature and Forest Therapy)

 

결국 최순나 선생님이 36년 교단에서 깨달은 것과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경험으로 배운 것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학원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사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스스로 정리할 줄 아는 아이. 지쳐있지 않은 부모 곁에서 자연을 누리며 책과 함께 자라는 아이. 그 아이가 결국 교실에서도, 인생에서도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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