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이가 학교를 처음 시작했을 때, 독립적인 읽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는 동안 준이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해 있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날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준이와 친한 친구 중 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어머니가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기에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아이가 워낙 뛰어나니 읽기 활동을 계속 서포트해달라는 조언을 선생님이 해주셨다는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솔직히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저 아이는 저렇게까지 잘하는데, 준이는 아직 기초 수준인데.
그렇다고 아이를 다그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강요하지 않되 읽기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 방법이 도서관이었습니다.
강요하지 않고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 자주 갔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책에 둘러싸인 환경에 있게 했습니다. 그중에 한 권이라도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냥 앉아만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스스로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얇고 쉬운 것들이었지만, 점점 두꺼워졌습니다. 학교에서 기초 수준이었던 읽기 레벨이 조금씩 올라갔고, 집에서도 읽기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성적이 향상되는 것도 눈으로 보였습니다.
그 과정을 겪고 나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읽기는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환경이 먼저입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가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9년 경력의 초등교사 김성효 선생님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독서 습관이 전혀 없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유치원 수준의 그림책부터 시작하게 했습니다. 수준에 맞는 책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다섯 손가락 꼽기'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다섯 개를 넘으면 너무 어려운 책, 한두 개 정도면 딱 적당한 책이라는 기준입니다. 읽기는 수준에 맞는 것에서 시작해야 흥미가 이어집니다. 준이가 도서관에서 스스로 얇고 쉬운 책을 집어 든 것이 정확히 그 원리였습니다. (출처: 한국교육개발원)
말은 잘하는데 쓰기는 싫다고 합니다
준이는 말을 참 잘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표현도 풍부합니다. 그래서 쓰기도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기를 쓰게 해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두세 번 시도했는데 매번 실패했습니다. "쓸 게 없어요"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쓰라고만 했습니다. 뭘 써야 하는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런 안내 없이 "오늘 일기 써"라고만 했던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아이가 아니라 제 방식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방향을 바꿔볼 생각입니다. 날씨 변화를 관찰해서 한 문장 쓰기,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만 쓰기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스티커 기호를 활용해서 느낌표는 오늘 새로 알게 된 것, 물음표는 궁금한 것을 적는 방식도 써볼 생각입니다. 쓰기에 거부감이 있는 아이에게 일기라는 형식 자체가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형식을 없애고 한 줄부터 시작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김성효 선생님은 쓰기가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독서가 인풋이라면 쓰기는 아웃풋이고, 우리 사회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 훈련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일기 쓰기가 어렵다면 날씨 변화를 관찰해서 쓰거나, 하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선택해서 쓰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한 번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 과정이 쓰기 실력을 키운다고도 강조합니다. 준이에게 무작정 쓰라고만 했던 제 방식이 틀렸다는 걸 선생님 말씀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아이가 쓰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출처: 한국어교육학회)
플래너 대신 루틴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손으로 플래너를 씁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글로 정리하는 것은 다릅니다. 써두면 잊어버리지 않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돌아보면 어릴 때 방학 숙제로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던 것이 이 습관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그 숙제가, 미래를 계획하는 힘을 키워줬습니다.
준이에게 플래너를 직접 쓰게 해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대신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학습지를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 등교 전에 푸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실랑이가 많았습니다. 하기 싫다고, 왜 아침부터 해야 하냐고.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도 습관이 됐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등교 전에 스스로 학습지를 챙깁니다.
작은 루틴 하나가 자리를 잡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나니 그 안정감이 다른 것들로 이어졌습니다. 루틴이 있는 아이는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압니다. 그게 자기주도 학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효 선생님은 초등학생 때 가장 중요한 습관이 잘 읽고 잘 쓰는 능력과 함께 내일을 생각하는 학습 습관이라고 강조합니다. 플래너를 복잡하게 쓰기보다 했는지 안 했는지 체크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모가 꾸준히 다음에 뭐 하기로 했지라고 질문하며 상기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준이가 말하지 않아도 학습지를 챙기게 된 것, 그게 바로 이 원리가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얻게 하는 것과 같다는 선생님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결국 읽기, 쓰기, 루틴. 세 가지 모두 거창한 교육법이 아닙니다. 도서관에 함께 가는 것, 일기 대신 한 줄부터 시작하는 것, 아침에 학습지를 챙기는 작은 습관 하나. 그 작은 것들이 쌓여서 아이의 공부 뼈대가 됩니다. 저는 아직 배우는 중이지만, 방향은 맞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