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오히려 더 나쁜 엄마를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더 잘해주려고 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통제하려 들고, 결국 더 자주 화를 내게 됐습니다. 그 역설을 경험하면서 배운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잘하려고 할수록 더 힘들었습니다
지안이가 태어난 첫 해였습니다. 신생아를 키우면서 일도 하고, 첫째 준이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했습니다. 준이에게는 자극이 되는 활동을 해주고, 지안이는 충분히 안아주고, 밥은 영양 있게 차리고, 집은 깨끗하게 유지하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니 항상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준이와 놀아주다 보면 지안이가 생각났고, 지안이를 안아주다 보면 준이가 신경 쓰였습니다. 밥을 간단하게 차리면 이것밖에 못 해줬다는 자책이 왔습니다. 집이 조금 어지러우면 엄마가 이것도 못 하냐 싶었습니다.
그 자책이 쌓이면서 예민해졌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났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화내는 엄마가 되고 있었습니다.
완벽주의적 양육(Perfectionist Parenting)은 부모 자신의 소진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기준이 부모를 지치게 만들고, 그 지침이 아이와의 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가 완벽한 부모를 목표로 하는 부모보다 아이와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APA - Perfectionism and Parenting Stress)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해결책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좀 내려놓아도 돼. 처음엔 그 말이 불편했습니다. 내려놓으면 아이들이 뭔가 부족해지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의 높은 기대치가 저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밥은 간단해도 됐습니다. 집은 조금 어지러워도 됐습니다. 준이와 매일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기대치를 낮추니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고, 자책이 줄었습니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이 저녁 밥상이었습니다. 매일 반찬 세 가지 이상을 차리려던 것을 그냥 있는 것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계란 후라이와 김치, 된장찌개로도 충분했습니다. 처음엔 부족한 것 같았는데, 아이들은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훨씬 여유로워졌습니다.
그 여유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돌아왔습니다. 밥 차리는 것에 에너지를 다 쏟지 않으니, 밥 먹는 시간에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더 적게 하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 됐습니다.
좋은 엄마의 기준을 다시 정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좋은 엄마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좋은 엄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엄마였습니다. 영양 있는 밥, 깔끔한 집, 자극이 되는 활동, 감정을 잘 받아주는 것. 다 중요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다 잘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의 기준은 다릅니다. 아이가 엄마와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말하면 들어준다고 느끼는지, 실수해도 괜찮다고 느끼는지. 이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밥이 간단해도, 집이 조금 어지러워도, 이것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호주 엄마들을 보면 그 기준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완벽하게 보이려는 압박이 덜합니다. 아이가 어지른 것을 그대로 두고 커피를 마시는 엄마,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엄마. 그 모습들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더 건강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연구에서는 스스로에게 친절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나은 부모가 되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완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것을 목표로 할 때 부모도 아이도 더 행복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다 예민해졌던 그 시기가,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출처: Dr. Kristin Neff - Self-Compassion in Parenting)
지금도 완벽한 날은 없습니다. 밥을 태우는 날도 있고, 화를 내는 날도 있고, 아이들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듣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보다 자책이 줄었습니다. 오늘 좀 부족했어도, 내일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그것이 지금 저의 좋은 엄마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