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이제 지안이가 더 좋아?" 준이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 생각이 이미 꽤 오래됐을 거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후 첫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후 달라진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동생이 생긴 후 첫째에게 나타난 변화
지안이가 태어났을 때 준이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동생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준이는 신나했습니다. 그런데 지안이가 실제로 집에 오고 나서, 준이가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말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가, 한동안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며칠이 지나면서 신호들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혼자 잘 놀던 아이가, 제가 지안이를 안고 있으면 옆에 와서 뭔가 이유를 만들어 관심을 끌려 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엄마, 나 봐요"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자기 전에도 평소보다 더 오래 옆에 있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신호를 처음엔 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신생아를 돌보는 것 자체가 너무 벅찼기 때문입니다. 지안이가 밤에 자주 깨고, 수유를 하고, 그 사이에 집안일을 하다 보면 준이에게 충분히 집중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준이가 그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이제 지안이가 더 좋아?"
형제자매가 생긴 후 첫째가 보이는 이런 반응은 매우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나니, 준이의 행동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Zero to Three - Sibling Adjustment)
첫째만의 일대일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의식적으로 준이만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지안이가 낮잠을 자는 짧은 시간 동안, 준이와 단둘이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됐습니다. 준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하는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처음엔 그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준이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지안이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예전엔 동생이 자기 물건을 건드리면 짜증을 냈는데, 조금씩 너그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준이는 지안이를 잘 챙깁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지안이한테 "오늘 어린이집 어땠어?" 하고 먼저 묻기도 합니다. 지안이가 어딘가 부딪히거나 울면 먼저 달려가기도 합니다. 처음 동생이 생겼을 때 조용해졌던 그 아이가, 지금은 제일 든든한 오빠가 됐습니다. 물론 차 안에서 장난감 때문에 다투는 건 여전하지만요.
첫째 아이가 동생 탄생 후 건강하게 적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모와의 일대일 시간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짧더라도 첫째만을 위한 시간이 규칙적으로 있을 때, 아이는 자신의 자리가 여전히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직접 경험해서 알았습니다. (출처: APA - Sibling Relationships and Child Development)
첫째에게 솔직한 대화가 관계를 바꿨습니다
"엄마는 준이도 좋고 지안이도 좋아. 그런데 지안이가 아직 아기니까 더 많이 도와줘야 해. 그게 더 좋아하는 게 아니야." 준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뭔가 무거운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준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지안이 때문에 바쁠 때, 지금은 지안이가 먼저지만 이따가 준이 차례라고 미리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이는 기다리는 것을 배우면서도, 자신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첫째에게 이해와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를 자주 듣습니다. "오빠니까", "언니니까"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첫째가 억울함을 쌓아가는 경우입니다. 저도 그 함정에 빠질 뻔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준이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날, 첫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에게 충분한 엄마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래도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채려고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