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본 적 있으신가요? 읽으라고 말해도 안 하고, 사줘도 안 펴고, 억지로 앉히면 분위기만 나빠집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이 글에서 독서 습관을 만드는 환경 조성법과 시행착오를 정리합니다.
초등 독서 습관은 강요가 아니라 환경으로 만들어집니다
아기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줬습니다. 잠자리 독서도 거의 빠뜨리지 않았고, Julia Donaldson의 Room on the Broom은 너무 많이 읽어 달달 외울 정도가 됐습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그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첫째가 옆에 서서 선생님보다 먼저 내용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정말 다 듣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습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환경을 의식적으로 만든 결과였습니다. 도서관에 자주 갔고, 집 곳곳에 책을 뒀습니다. 읽으라고 말하는 대신 손이 닿는 곳에 책이 있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치동 영어 학원 원장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공통점이 수백 권 이상의 독서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기준으로 영어 원서를 200권 이상 읽지 않은 최상위권 학생을 10년간 본 적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독서는 영어 성적뿐 아니라 모든 과목 학습의 기반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출처: National Literacy Trust)
암기와 문법 위주 학습이 오히려 흥미를 막았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처음에는 글자 위주, 문법 위주로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어 공부를 점점 싫어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기적의 한글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그림을 보며 재미 위주로, 발음에 중심을 두고 접근하니 달랐습니다. 한글을 다 뗄 수 있었습니다. 같은 목표였는데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구몬학습지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반복 학습 구조가 정확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하다 보면 흥미가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한국에 2~3주 다녀오면 한국어가 눈에 띄게 느는 것을 매번 확인합니다. 교실에서 외우는 언어보다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훨씬 빠르게 흡수됩니다. 암기와 문법으로 언어를 가르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흥미를 막았다는 걸, 아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영상에서도 단어 암기 위주의 학습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고 지적합니다. 문법도 기초적인 언어 능력이 갖춰진 후에 배워야 의미가 있고, 기초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법을 먼저 익히는 것은 학습 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출처: Krashen, S., The Input Hypothesis)
부모가 먼저 책을 펴는 것이 가장 강력한 독서 교육입니다
독서 환경을 만드는 데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면, 아이들이 그 옆에서 같이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졌습니다. 아빠도 핸드폰을 보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는 논리였습니다.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깨어있는 동안은 독서하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달라고. 처음엔 남편도 쉽지 않아했습니다. 퇴근 후 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저녁 식사 후에 가족이 식탁에 함께 앉는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읽어달라는 책을 읽어주거나 제 책을 읽습니다. 남편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펴기도 합니다. 강요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아이들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에서 육아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독서보다 학원, 학습지가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독서는 당장 성적에 반영이 안 되니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며 느낀 건, 독서는 성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자체를 키우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 힘이 결국 모든 과목의 기반이 됩니다.
Albert Bandura의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주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배웁니다.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이 아이에게 책 읽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라는 신호를 줍니다. 말로 독서를 강요하는 것보다, 부모가 직접 책을 펴는 장면이 훨씬 강력한 교육입니다. (출처: Simply Psychology, Bandura)
결국 독서 습관은 강요가 아니라 환경이 만듭니다. 암기와 문법보다 재미있게 경험하는 것이 언어를 키웁니다. 그리고 부모가 먼저 책을 펴는 것이 어떤 말보다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