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5월 구몬 학습지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쉽게 간다 싶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학습지는 학습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희 아이에게는 오히려 학습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키운 셈이었습니다.
학습지를 시작한 이유와 예상 못한 갈등
구몬을 시작하려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제 판단이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5분, 10분도 진득이 못 앉아있는 아이를 보며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여기서 집중력 지속 시간(attention span)이란 한 가지 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초등 저학년의 경우 10~20분 정도가 평균이지만, 개인차가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둘째는 솔직히 비교 심리였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엄마가 아이에게 구몬을 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때다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얘기했고 친한 친구가 한다니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수학만 할 생각이었는데 영어도 같이 하겠다고 아이가 먼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매일 계속되는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난 후 태권도, 피아노 등 활동이 많아 아침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침 시간은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빨리 끝내야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무한대인 양 끌었습니다. 그러면서 실랑이가 계속되었고, 저와 아이 사이의 스트레스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의 충돌로 설명합니다. 외재적 동기란 보상이나 처벌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내재적 동기는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에서 나오는 동기를 뜻합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제가 아이에게 학습지를 강요한 것은 결국 외재적 동기만 자극한 셈이었습니다.
아이가 직접 말한 학습지와 사고력 수학의 차이
그러던 중 아이가 수학 올림피아드 반에 자원했다고 했습니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구몬 수학을 그렇게 싫어하던 아이가 올림피아드 반에 자원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더군다나 자원하지 않은 학생들은 안 해도 되는 숙제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올림피아드 숙제는 구몬 학습지와 사뭇 달랐습니다. 사고력을 요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올림피아드에 자원한 이유는 무엇이고 학습지를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대와 다르게 아이가 너무도 명확하게 그 차이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올림피아드 문제와 구몬 학습지의 차이를 아이 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올림피아드: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고, 답이 나오게 된 과정을 설명해야 함
- 구몬 학습지: 정답을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
새삼 놀랐습니다. 아이가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습지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구몬 학습지는 반복 학습(drill and practice)을 통한 자동화를 목표로 합니다. 여기서 자동화란 특정 개념이나 연산을 생각 없이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제 아이처럼 호기심과 사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교육 트렌드는 단순 암기와 반복보다 메타인지 능력을 강조합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입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아이가 올림피아드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답을 내는 과정을 설명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돌아보는 것 자체가 메타인지를 키우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저는 맞벌이를 하고 있어 따로 공부를 봐줄 시간이 마땅치 않아 학습지 그만두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아들과 이야기한 이후 결심이 분명히 섰습니다. 아이의 자질과 흥미를 고려해 학습지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와 부모 간의 스트레스도 줄고, 아이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습지는 워킹맘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오히려 정서적 갈등만 키웠습니다. 양소영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부모의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의 불안을 감싸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학습 속도가 느리더라도 정서적인 부분이 채워지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첫째가 세 살일 때 친구가 놀러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몇백 권이 넘는 책으로 성을 만든다며 다 꺼내놓아 집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혼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재미있게 놀았네 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호되게 나무랐다면 첫째는 책을 싫어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첫째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책으로 집을 짓습니다.
구몬 학습지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결국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모든 교육 방법이 모든 아이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양소영 변호사의 말처럼 "모든 교육 정보나 좋은 환경이 아이에게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취사선택이 중요"합니다. 초등 시기는 학습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공부 때문에 싸우고 잔소리하는 대신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