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순간이 있습니다. 형제가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 말려야 할지 지켜봐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그 순간입니다. 정답이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매번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 9살 첫째 준이와 4살 둘째 지안이 사이에서 제가 매일 흔들리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합니다.
차 안에서 벌어진 싸움, 결국 둘 다 울었습니다
얼마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안이가 장난감 몇 개를 들고 탔습니다. 평소 장난감에 관심이 없던 준이가 동생이 노는 모습을 보더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안아, 같이 놀자." 준이가 부드럽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지안이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싫어!"
저는 지안이를 타일렀습니다. "오빠랑 같이 놀아야지. 오빠도 너랑 놀아주잖아." 그러자 준이가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그래 지안아. 나는 너랑 항상 같이 놀잖아. 너도 그래야지!" 하지만 지안이는 형평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엔 아직 만 네 살입니다. 그저 감정에 따를 뿐입니다. 싫으면 싫은 겁니다.
싸움이 길어지자 저는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해력이 더 높은 첫째에게 이해를 강요했습니다. "지안이가 어리니까 네가 이해해줘." 준이가 화를 냈습니다. "왜 내가 항상 양보해야 해!" 그 말에 저도 준이에게 미안해져서 이번엔 지안이를 타일렀습니다. "오빠랑 같이 나눠서 놀아." 혼났다고 느낀 지안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도 폭발했습니다. "너네 계속 싸우면 오늘 텔레비전 못 봐!" 둘 다 눈물을 흘리며 싸움이 끝났습니다.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결과는 셋 다 기분이 나쁜 상태였습니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제가 가장 많이 한 실수는 첫째에게 이해를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오빠라는 이유로 계속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준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이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제 심리 상태가 개입의 질을 결정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형제 싸움에 어떻게 개입하느냐는 아이들의 싸움 강도보다 제 심리 상태에 더 많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평안한 날에는 아이들이 싸워도 조금 더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길 바라며 관망합니다. 신체적인 충돌, 누가 때린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하면 70퍼센트 정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합니다. 준이가 먼저 양보하거나, 지안이가 포기하거나 하는 식으로 마무리됩니다.
반면 제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싸우는 소리 자체가 견디기 힘듭니다. 그럴 때는 빨리 끝내고 싶어서 성급하게 개입하고, 결국 둘 다 상처를 받는 방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더 참았더라면 둘이 알아서 해결했을 텐데 싶을 때도 있습니다.
개입을 했을 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 그런 결론이 났는지 서로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들과 어른이 보는 시각이 언제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이 차이가 다섯 살이다 보니, 두 아이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리학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제 갈등에서 부모의 개입 방식은 부모의 정서 상태와 직결된다고 합니다.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개입하면 중재보다 통제로 흐르기 쉽고, 이는 오히려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차 안에서 경험한 것이 정확히 그 패턴이었습니다. (출처: Gottman Institute - Emotion Coaching)
남편은 아들에게 더 엄하고, 저는 더 감쌉니다
형제 싸움을 대하는 방식에서 남편과 저의 차이도 큽니다. 남편은 둘째 지안이에게 더 관대한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제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지만, 남편은 아들인 준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울지 않아야 하고, 항상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요.
준이가 감정적으로 힘들어할 때 저는 보듬어주려 하는 반면, 남편은 울면 안 된다며 밀어붙일 때가 많습니다. 부부 간의 불화를 줄이기 위해 저는 그 순간에는 가만히 지켜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준이 옆에 가서 감정을 보듬어줍니다.
이게 맞는 방식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남편과 준이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동시에 준이가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에게는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남편이 호주에서 자랐음에도 가끔 저보다 더 가부장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문화보다 개인의 성향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육아 방식은 어느 나라에서 자랐느냐보다, 어떤 가정에서 자랐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남편을 보며 느낍니다.
형제 관계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형제 갈등에 일관성 있게 개입할 때 아이들이 갈등 해결 능력을 더 잘 발달시킨다고 합니다. 특히 첫째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첫째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차 안에서 그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거리가 육아에서 가장 멀다는 걸 매일 실감합니다. (출처: Siblings Without Rivalry, Adele Faber / APA - Sibling Relationships)
결국 형제 싸움에서 완벽한 개입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심리 상태를 먼저 살피고, 가능하면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첫째에게 오빠라는 이유만으로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것. 아직 잘 못하지만, 그게 맞는 방향이라는 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