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텀에 $1,000이 조금 넘는 학원 견적서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비용보다 더 마음에 걸린 것은 토요일 반나절, 매일 쏟아지는 숙제, 만 7살 아이에게 그 무게가 맞는 건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제 마음 속에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기준이 이미 깊이 박혀 있었는데, 호주에 와서 그것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는 시간이 쌓였습니다. 아이보다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1,000 앞에서 멈췄던 이유
중국이나 인도 배경 학부모들이 Reception, 만 5세 때부터 아이를 사설 학원에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3시간 수업에 숙제도 매일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 아이만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부모라면 아마 모두 아는 그 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직접 알아봤습니다. 토요일 반나절 수업, 텀당 비용 약 $1,000. 견적을 보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편은 담담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리고, 주말 반나절을 공부로 채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학업 스트레스를 이 나이에 심어주는 것이 맞나, 그러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결국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 이후에도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호주에서도 사교육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렸습니다. OECD 교육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사교육 참여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사설 보충 교육을 시작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호주로 왔는데, 그 불안이 여기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했습니다. (출처: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5)
그만두기 싫다던 첫째, 발레를 두 텀 만에 그만둔 둘째
입학 전 Reading Eggs 앱으로 파닉스와 철자 공부를 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고 하셨지만 불안했습니다. 앱은 아이와 함께 게임처럼 할 수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고, 학교에 들어가서 학습을 이어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는 현재 구몬 수학 학습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영어와 수학을 함께 시작했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했습니다. 그만두자고 했더니 오히려 아이가 그만두기 싫다고 했습니다. 구몬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신 영어를 그만두고 책을 더 많이 읽기로 제안했습니다. 독서 저널도 함께 쓰기로 했고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조율이었습니다.
둘째는 발레를 시작했다가 두 텀 만에 그만뒀습니다. 하기 싫다고 해서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찾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계속 시키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내재적 학습 동기와 지속성이 높아집니다. 외부 압박으로 시작한 활동보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활동에서 더 오래, 더 깊이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발레를 그만두게 한 것이 맞는 선택이었는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출처: Australian Council for Educational Research, 2022)
아침밥 먹으며 책 읽는 아이와 어린 왕자
저희 집 아침은 전쟁입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들도 저도 등교와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첫째는 20분 구몬 학습지를 풀고, 트럼펫 연습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남편이 매일 재촉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직도 정답을 못 찾았습니다.
독서 저널도 매일 쓰기로 했는데 지켜지지 않는 날이 더 많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체력이 방전돼서 제가 먼저 잊어버리는 날이 많습니다.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최근에 어린 왕자를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읽기보다 하루에 한 챕터씩 함께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읽고 나서 이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어보면 첫째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저와 아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학습이 아니라 연결이 되는 시간입니다.
한국 엄마가 호주에서 배운 것
한국에서 자란 저로서 공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실컷 뛰어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 자체가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발레를 두 텀 만에 그만둔 둘째가 다음엔 뭘 해보고 싶다고 말할 때, 아이가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학원 $1,000짜리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내려놓은 건 아닙니다. 여전히 남의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 흔들리고, 구몬 학습지를 안 하는 날이면 찜찜합니다. 그래도 방향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독립적인 어른으로 자라는 것,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 그 방향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것이 호주에서 제가 배운 가장 큰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호주에서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정말 뒤처지지 않나요?
학교마다, 아이마다 다릅니다. 호주 공립학교 교육만으로도 기초 학력은 충분히 키울 수 있습니다. 다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가정에서의 독서 습관과 기초 수리 능력이 차이를 만드는 경향이 있어, 구몬이나 홈리딩 같은 가벼운 루틴을 병행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아이가 과외 활동을 금방 그만두려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처음부터 한 텀을 끝까지 해보고 결정하자는 기준을 세워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단, 억지로 계속 시키는 것보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찾아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습관을 만들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양보다 빈도가 중요합니다. 매일 한 챕터, 혹은 10분이라도 정해진 시간에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어린 왕자처럼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을 고르면 부모의 참여도도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