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살림도 해주시고, 아이 픽업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에서는 그 모든 안전망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내가 아파도, 급한 일이 생겨도 달려와줄 가족이 없는 곳에서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 외로움과,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쉼표가 없는 삶
친정이나 시댁 없이 호주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쉼표가 없는 삶입니다. 한국에서는 반찬 하나라도 얻어먹거나, 급할 때 아이를 잠깐 봐줄 가족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이 전무했습니다.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고, 매일 출근까지 하다 보면 체력이 부칠 때가 많았습니다. 내 몸이 아파도 아이 밥을 차리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었습니다. 독감에 걸려 온몸이 쑤시는 날에도 패나돌로 버티며 육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 날 이민이라는 선택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코로나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저와 첫째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둘째는 괜찮았습니다. 격리가 완화된 시기라 마스크를 쓰면 외출이 가능했습니다. 아픈 첫째를 돌보면서, 둘째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쓴 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픽업하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살림도 했습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둘째를 맡기고 첫째를 돌봤습니다. 친정이 가까이 있었다면 둘째만이라도 부탁드렸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부부만의 시간도 사라졌습니다. 데이트는커녕 온전한 대화 한 번 나누기 어려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교대 근무자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도 받아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육아 파트너이지만 동시에 지쳐있는 두 사람이 함께 버티는 형태였습니다.
이민자 가정의 심리적 고립감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모국의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없이 육아를 하는 이민자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부모들에 비해 육아 스트레스 지수가 평균 1.4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이가 아프거나 부모 본인이 아픈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을 때 스트레스가 가장 높아진다고 보고됩니다. (출처: Australian Institute of Family Studies, 2022)

첫째가 입원했던 날 밤
첫째가 1살이 되기 전, 40도가 넘는 고열이 났습니다. 패나돌과 뉴로핀을 먹이며 증상을 지켜봤는데 아이가 숨쉬는 것까지 힘들어했습니다. 당시 직장 동료들이 모두 육아맘이어서 물어봤더니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GP에게 갔더니 어서 응급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이 참 무서웠습니다.
아이는 이틀 동안 입원했습니다. 직장에는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받았습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일 걱정까지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때 같이 걱정해주던 직장 동료 육아맘들이 있었고, 아이가 아프다고 휴가를 내면 흔쾌히 승인해주는 상사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다면 그 밤을 어떻게 넘겼을지 모릅니다.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살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외로움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찾은 것이 지역 플레이그룹(Playgroup)이었습니다. 여기서 플레이그룹이란 호주 지역 카운실이나 교회 등에서 운영하는 영유아 대상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의 육아 커뮤니티 모임으로, 아이들은 함께 놀고 부모들은 서로 교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서툰 영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밤새 잠을 못 자 초췌한 얼굴로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Coffee?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특히 Manly Music이라는 플레이그룹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과 노래를 함께 하는 시간이 끝나면, 그곳에서 자원봉사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만드신 모닝 티와 빵을 나눠주셨습니다. 엄마들은 그 시간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소박하지만 그 시간이 한 주를 버티게 해줬습니다.
한인 커뮤니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처음엔 주저했습니다. 도시가 작고 한인 규모가 작다 보니 뒷이야기가 나오기 쉬운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또래 아이의 엄마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습니다. 그중 한 분은 지금도 자주 교류하는 사이이고, 아이들끼리는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한인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은 같은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맞으면 반찬을 나누거나 급할 때 아이를 잠깐 봐주는 대체 친정 네트워크가 생깁니다. 지금 첫째의 수영, 피아노 선생님도 모두 한인 커뮤니티에서 소개받았습니다.

공원과 플랫 화이트 한 잔
답답한 날에는 무조건 유모차를 끌고 집 앞 공원이나 바다로 나갔습니다. 푸른 하늘과 넓은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면서 호주의 자연이 주는 평온함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변에 공원과 놀이터가 많고, 조금만 운전해 나가면 자연공원도 있어 아이를 키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힘든 날 더 크게 느꼈습니다.
아이가 잠든 뒤 집 데크에 앉아 마시는 플랫 화이트 한 잔, 그리고 오늘도 무사히 버텼다는 일기 한 줄. 거창하지 않은 작은 루틴들이 저를 지탱했습니다. 이민자 부모의 정신 건강을 연구한 자료에서도 소규모 커뮤니티 참여와 자연 환경 접근성이 육아 고립감을 줄이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됩니다. (출처: Beyond Blue - Parental Wellbeing Report, Australia)
친정 도움 없이 맨땅에서 시작한 호주 육아였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오롯이 우리 가족의 힘으로 아이의 모든 순간을 채워나갔다는 것은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호주에서 무료 플레이그룹은 어디서 찾나요?
지역 카운실 웹사이트나 Playgroup Australia(playgroupaustralia.com.au)에서 근처 플레이그룹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무료이거나 소액의 참가비만 받습니다.
한인 커뮤니티는 어떻게 찾나요?
페이스북에서 지역명과 한인, 한국 맘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룹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나 한국 마트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도움받을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1800 022 222(healthdirect)에 전화하면 24시간 간호사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증상의 긴급도를 판단해 GP 방문이나 응급실 방문 여부를 안내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