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혼자 운 밤이 참 많았습니다. 소리 없이, 이불을 끌어안고. 옆에서 자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 눈물이 멈추기도 하고, 더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타지에서 가족 없이 육아를 하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지, 호주에 오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혼자였던 분만실
둘째를 낳던 날은 예정일이 아니었습니다. 2021년, 코로나 격리 기간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혈압이 높다며 바로 출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출산 가방도 제대로 싸놓지 못한 채였습니다.
시어머니께 유치원에 가 있는 첫째 픽업을 부탁하고, 남편에게는 퇴근 후 집에서 챙겨올 것들을 문자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분만실에 혼자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기간이라 남편이 병실에 머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출산 후 힘든 몸으로 둘째가 잠이 들지 않고 계속 울 때 달래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첫날 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산후 우울감과 신체적 고통,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이민자 산모의 산후 경험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모국 가족과 떨어져 출산한 이민자 여성은 산후 정서적 지지 결핍으로 인해 산후 우울증 발생 위험이 현지 출생 여성보다 약 1.5~2배 높게 나타납니다. 단순히 외로움이 아니라, 지지 체계의 부재가 신체적·정신적 회복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출처: Australian Institute of Health and Welfare - Perinatal Mental Health)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던 순간
병실에 남편과 첫째가 방문했을 때 첫째 얼굴을 보고 멈칫했습니다. 이전까지 조그맣고 아기 같던 아이가 갑자기 커 보였습니다. 갓난아기인 둘째를 돌보느라 첫째에게 전처럼 신경을 쏟아주지 못하면서도, 이해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첫째가 미술심리치료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많이 우울한 것 같아요. 많이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아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펑펑 울고 싶었지만 첫째 앞에서는 참았습니다.
둘째 아이 출생 이후 첫째 자녀가 겪는 심리적 변화는 많은 연구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관심이 갑자기 분산될 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의 아이들은 행동이나 정서 변화로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미술심리치료처럼 비언어적 표현 매체를 통한 정서 개입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Australian Psychological Society, 2022)
코로나 격리, 아픈 몸으로 두 아이를 돌봤던 밤
첫째와 제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였습니다. 2층에서 첫째와 함께 격리하고, 남편과 둘째는 아래층에 있었습니다. 저도 아팠지만 옆에서 끙끙거리는 첫째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면서 2층으로 올라오려는 둘째를 달래야 했습니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둘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계단 앞에서 막아야 했던 그 밤이 잊히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집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한국에 가족이 있었다면, 친정엄마가 가까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그 밤처럼 간절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감기몸살 중에 걸려온 전화
한번은 감기몸살로 몸이 완전히 쓰러진 날이었습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남편이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을 먹고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냉장고 정리를 잘 해서 남편이 그런 음식을 먹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아픈 것을 아시면서도 남편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말이었는데, 그날은 서럽고 속상했습니다. 친정엄마가 가까이 살았다면 제 걱정부터 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서글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친정엄마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괜히 걱정하실까봐 그 이야기는 결국 하지 못했습니다. 속상함을 혼자 삼켰습니다.
이민자 부모의 정서적 고립감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모국 가족 네트워크가 없는 이민자 부모들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적 지지를 구할 대상이 제한적이어서 심리적 소진이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배우자의 가족이 현지에 있는 경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소외감이 더해져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Multicultural Mental Health Australia, 2022)
[이미지: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 앉아있는 엄마의 뒷모습]
그래도 조금씩 단련되어 갑니다
타지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육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단련이 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니 힘든 일이 줄었고, 저 자신도 예전보다는 단단해졌습니다.

남편이 이민자인 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 서글픔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해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저의 이런 감정을 인지해줬으면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속상해하면 더 힘드니까요. 작은 변화지만 그것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이민자 엄마가 느끼는 이 감정은 나약함이 아니라, 그만큼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호주에서 산후 우울감이 느껴질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나요?
PANDA(perinatal anxiety & depression australia, panda.org.au) 에서 전화 상담(1300 726 306)과 온라인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통한 상담도 가능하니 언어 걱정 없이 연락해보세요.
둘째 출산 후 첫째가 달라진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행동이나 정서 변화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내기보다 둘만의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변화가 오래 지속된다면 학교 카운슬러나 아동 심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해보세요.
이민자 부모가 정서적으로 힘들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나요?
Beyond Blue(beyondblue.org.au, 1300 22 4636)와 Multicultural Mental Health Australia(mmha.org.au)에서 다문화 배경을 가진 분들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