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에서 살면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신발 끈을 혼자 묶으려고 한참 씨름하는 동안 옆에서 그냥 기다리는 부모, 아이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바로 알려주지 않고 지켜보는 부모. 빨리 도와주면 되는데 왜 저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다림에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다림이 자연스러운 문화였습니다
준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호주 부모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운동회, 학부모 모임.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호주 부모들은 아이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한 엄마가 아이가 가방을 혼자 챙기는 것을 기다리는 장면을 봤습니다. 아이가 물건을 하나씩 천천히 넣는 동안 엄마는 옆에 서서 스마트폰도 꺼내지 않고 그냥 기다렸습니다. 5분쯤 됐을 겁니다. 한국에서라면 빨리빨리 하면서 도와줬을 상황이었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가 다 챙기고 나서 잘했다는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준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준이가 수업 중 문제를 풀면서 막혔을 때, 선생님은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 생각해봤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준이의 읽기 능력이 처음엔 또래보다 느리게 발달했습니다. 저는 불안했습니다. 뭔가 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준이만의 속도가 있다고, 그 속도를 존중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이 지나자 준이의 읽기 능력이 도약했습니다. 억지로 끌어올리려 했다면 읽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겁니다.
아동 발달 연구에서는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다르며, 인위적으로 속도를 앞당기려는 시도가 오히려 발달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언어, 읽기, 사회성 발달은 아이가 준비됐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다려주는 것이 방치가 아니라 아이의 발달 리듬을 신뢰하는 것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출처: Raising Children Network Australia - Child Development)
기다림이 자율성을 키웁니다
호주 부모들이 기다려주는 것은 단순히 느긋한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기회를 주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도와주면 빠르지만, 그러면 아이는 혼자 하는 연습을 하지 못합니다. 기다리면 느리지만, 아이가 해냈을 때 그 성취감이 다음 도전의 동력이 됩니다.
준이가 처음 혼자 심부름을 하러 나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집 근처 슈퍼마켓까지 혼자 우유를 사러 보냈습니다. 기다리는 10분이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창문 너머로 자꾸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우유를 들고 씩씩하게 돌아오는 준이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그 표정은 제가 도와줬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다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취였습니다.
지안이가 신발을 혼자 신으려고 끙끙거릴 때, 저도 이제는 조금 더 기다립니다. 예전에는 빨리 신겨주고 싶었는데, 지안이가 혼자 성공했을 때 보이는 표정을 보고 나서 기다리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작은 성공들이 쌓여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됩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이론에서 앨버트 반두라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경험이 이후 도전에 대한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기다려줌으로써 아이에게 스스로 해낼 기회를 주는 것이 자기효능감을 키우는 핵심입니다. 빨리 도와주는 것이 친절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 있습니다. (출처: APA - Bandura Self-Efficacy Theory)
저도 기다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는 것이 아직도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자란 저에게 기다림은 본능이 아닙니다. 아이가 천천히 할 때 답답함이 올라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도와주면 1분이면 끝날 것을 5분 동안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연습합니다. 준이가 혼자 숙제를 풀고 있을 때, 막혔다고 느껴져도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해봤어?라고 먼저 묻습니다. 지안이가 옷을 혼자 입으려고 할 때, 빨리 입혀주고 싶은 충동을 참습니다. 아이들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한국 육아와 비교하면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부모가 너무 많은 것을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원을 알아봐 주고, 숙제를 도와주고, 친구 관계에도 개입합니다.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빨리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아이가 스스로 해낼 기회를 줄이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다리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호주에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