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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육아, 상장 대신 지렁이를 들고 온 날

by jamieseo1999 2026. 9. 11.

"엄마, 엄마, 이것 봐봐~" OSHC(학교 방과 후 돌봄 시설)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는데, 환한 얼굴로 손에 뭔가를 쥐고 달려옵니다. 저는 아이가 상장을 받은 줄 알았어요. 제 얼굴 앞으로 쑥 내민 손에는 손가락 마디만 한 큼지막한 지렁이가 아이 팔목을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어요.

호주 OSHC 픽업, 상장 대신 지렁이

"악!!!!"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요. 주위에 있던 OSHC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웃으며 저를 쳐다봤죠.

 

저는 민망함에 웃으며 "벌레를 그렇게 쥐고 있으면 어떡해~" 하고 말았죠. 아이는 집에 가서 키우겠다고 지렁이를 그대로 가방 안에 넣었어요. 차에서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혹시나 왕성한 호기심을 억누르는 일이 될까 목까지 차오르는 잔소리를 참았어요. 겁에 질린 저와 달리, 5살 둘째는 그 지렁이를 보며 왜 자기는 지렁이가 없냐고 불평하더라고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지렁이를 꺼내 뒷마당으로 달려 나갔어요.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흙을 담고 지렁이의 집을 꾸며 주기 시작했죠. 나뭇잎도 넣어 주고, 나뭇가지도 넣어 줬어요. 지렁이가 추울지도 모른다며 탁상등을 플라스틱 컨테이너 위에 비춰 주기도 했죠.

 

그렇게 2주 동안 아이들은 지렁이를 애지중지 돌봤어요. 지렁이가 무엇을 먹는지 찾아보고, 매일 살아 있는지 체크하고, 물로 흙을 적셔 주었죠. 조금 지나니 흥미가 떨어졌는지 지렁이를 찾지 않길래, 학교에 간 사이 뒷마당에 다시 놓아주었어요.

레드백 스파이더, 신난 아이 vs 걱정된 엄마

뒷마당에 있던 아이가 흥분해서 달려 들어와요. "엄마!!! 레드백 스파이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저는 혹시나 아이가 만질까 봐 걱정했어요. 레드백 스파이더는 남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등과부거미라고 하는 독성이 있는 거미거든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핸드폰을 달라는 아이에게 저는 몇 번씩이나 만지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했어요. 혹시나 그것도 키우겠다고 가지고 들어오면 어쩌나 겁이 나더라고요.

벌레 싫은 엄마가 벌레 박사 되는 법

지난 학기에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새에 대해 배우면서 참 많이 알게 됐어요. 레인보우 로리킷과 로젤라는 비슷한 색깔이지만, 로젤라는 눈가에 검은색을 띠고 있다고 배웠죠. 전에는 그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었는데,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됐죠.

 

바닥에 기어다니는 온갖 벌레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렁이가 영어로 뭔지 절대 몰랐을 거예요.

 

호주에서 자라면서 좋은 점은 온갖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운 동물들과 곤충들을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벌레를 보면 무섭다고, 만지지 말라고 먼저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여기 아이들은 무서움보다 호기심이 먼저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벌레만 보면 비명부터 질렀는데, 아이들 덕분에 조금씩 무서움 대신 궁금함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면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경험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아이들이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달팽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어제도 상추잎을 넣어 줬는데 다 먹었다며, '먹보 녀석들..'이라고 하며 첫째가 혼자 흐뭇하게 웃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엄마 마음으로는 깨끗하게 치우고 싶지만, 아이들이 흥미롭게 배우며 자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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