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어느 나라에서나 부모에게 특별한 순간입니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준이의 첫 등교를 경험했을 때,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당황스러웠던 것도 있고, 생각보다 좋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입학식이 없었습니다
준이가 호주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 저는 한국식 입학식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담임 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사진을 찍는 그런 장면이요. 그런데 호주 학교에는 그런 형식의 입학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등교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에 서 있었고,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이 준이에게 안녕, 여기 앉아도 돼라고 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처음엔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너무 가볍게 시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방식이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창한 시작이 없으니 준이도 그냥 학교에 가는 날처럼 자연스럽게 들어갔습니다.
학교 문화 자체도 달랐습니다. 선생님을 Miss, Mr로 부르는 것은 같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에게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교실 규칙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준이가 첫날 집에 와서 우리가 직접 규칙을 만들었다고 신나서 이야기했습니다.
학교 시작 방식의 차이는 교육 철학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호주 교육과정은 아이를 처음부터 능동적인 학습 참여자로 봅니다. 규칙을 함께 만드는 것, 선생님과의 수평적 관계는 아이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처음부터 키우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출처: 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
교실 안의 다양성이 당연했습니다
준이 반에는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태어난 아이, 인도에서 온 아이, 중국계 아이, 필리핀계 아이. 다양한 얼굴과 이름이 한 교실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준이가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아이가 준이 혼자라면 외롭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기우였습니다. 다들 다르니까 준이가 다른 것이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준이가 김밥을 도시락으로 가져가도, 한국어로 엄마와 통화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이 그게 뭐야, 맛있어? 하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양성이 일상인 환경에서 준이의 다름은 문제가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준이 반에 자폐와 ADHD를 함께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됐습니다. 혹시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가 준이에게 가르쳐준 것이 적지 않습니다. 준이는 그 친구의 소지품을 먼저 챙겨주고, 수업 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옆에서 돕습니다. 배려심이 깊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들을 때마다, 그 친구와 5년을 함께한 경험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포용교육(Inclusive Education)은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아이가 같은 교실에서 함께 배우는 교육 철학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통합 환경에서 자란 비장애 아이들은 공감 능력과 사회적 유능감이 더 높게 나타납니다. 다양한 필요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단순히 배려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각을 만들어줍니다. (출처: Autism Spectrum Australia)
호주 학교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호주 학교에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숙제가 적고 학습의 양이 적다 보니, 체계적인 반복 학습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국 학교처럼 촘촘하게 커리큘럼이 짜여있지 않아서, 부모가 따로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구몬 학습지를 따로 시킨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자율이 강조되다 보니 아이에 따라서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흐트러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준이가 첫날부터 자신이 교실 규칙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는 경험,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온 5년이 준이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면, 이 환경이 준이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줬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교육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는 부모의 노력이라는 것을, 준이를 키우며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