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부모 모임 안내문이 왔을 때, 솔직히 망설였습니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떤 분위기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안 가도 될까 싶었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서 갔고,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놀랐습니다.
한국 학부모 모임을 상상하고 갔습니다
한국에서 학부모 모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 앞에 학부모들이 앉아서 학교 방침을 듣고, 학급 임원을 선출하고,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아이 교육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이미지를 갖고 호주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갔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분위기였습니다.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서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습니다.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었습니다. 어색하게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Hi, is this your first year here?".
공식적인 순서가 시작됐을 때도 달랐습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올해 어떤 것을 기대하시나요, 아이에 대해 선생님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학부모들이 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장면이 한국에서 경험한 학부모 모임과 가장 달랐습니다.
그리고 성적이나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의 사회성, 학교 생활 적응, 어떤 것을 즐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었습니다. 한국에서였다면 학습 진도나 평가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그 부분은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학부모 참여(Parental Involvement) 연구에서는 학부모가 학교 활동에 참여할 때 아이의 학업 성취와 사회성 발달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호주 학교가 학부모 모임을 격식 없이 운영하는 것은, 더 많은 부모가 편하게 참여하도록 문턱을 낮추는 의도가 있습니다.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출처: Australian Institute of Family Studies - Parent Engagement)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학부모 모임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영어였습니다. 일상적인 영어는 괜찮지만, 교육 관련 용어나 빠른 대화를 따라가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실제로 모임 중에 처음 듣는 용어들은 못 알아들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그런 질문을 하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티가 날까 걱정됐지만 아이의 일이다 보니 놓치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옆에 앉은 엄마가 오히려 먼저 물어봤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얼마나 됐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그 짧은 대화가 낯선 모임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같은 반 부모라는 것 하나로 대화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날 이후로 학부모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처음엔 정보를 얻으러 간다는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다른 부모들과 연결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지내는지, 그 친구들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학교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 학부모 모임과 다른 점들
몇 년을 다니면서 한국과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 성적 비교가 거의 없는 것도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학부모 모임 후 자연스럽게 아이 학습 수준 이야기나 어느 학원에 다니는 등의 공부 관련 주제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호주에서는 그런 대화를 거의 못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좀더 자유롭게 키우는 분위기 입니다.
처음 그 모임에 갔던 날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용기를 내서 간 것이 맞았습니다. 그날 알게 된 한 엄마와 지금도 가끔 학교 앞에서 이야기 를 나눕니다. 이민자로 살면서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학교 학부모 모임이 그 연결의 시작점이 되어줬습니다. 이민자 부모로서 영어 때문에 학부모 모임에 가는 것을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