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상에 앉는 아이, 그게 가능한 일인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호주 학교에서 준이를 키우면서 그 답의 일부를 직접 보게 됐습니다.
선택이 있어야 주도성이 생깁니다
준이 학교에서는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큰 주제 안에서 어떤 각도로 탐구할지를 아이가 직접 정합니다. 환경 관련 주제가 나오면 준이는 공룡 시대의 기후 변화와 연결해서 탐구했습니다. 본인이 관심 있는 방향으로 가니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발표 날 다른 아이들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에 자신감이 달랐습니다. 억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는 태도가 보였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 때도 비슷했습니다. 준이가 그림을 그려가며 돌아가는 방식으로 풀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더 빠른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준이의 방식으로 끝까지 풀어보게 했습니다. 저도 옆에서 더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준이가 스스로 그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는 아이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경험할 때 내재적 동기가 자란다고 합니다. 주제를 스스로 고르는 것은 자율성을, 탐구를 통해 발표하는 것은 유능감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은 관계성을 충족시킵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때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호주 교육이 선택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실패도 과정의 일부로 봅니다
호주 학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준이가 수업 중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먼저 물었습니다. 틀렸다는 결론보다, 그 생각의 과정을 먼저 봤습니다. 틀려도 생각한 것은 인정받는다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틀릴까봐 입을 닫지 않습니다.
준이가 약분을 처음 배울 때 학습지 앞에서 완전히 막혔던 적이 있습니다.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잘 설명하지 못하자 유튜브 영상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영상을 세 번 반복해서 보고 나서 이제 알겠다며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막혔을 때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는 태도, 그것이 자기주도성의 핵심입니다.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연구에서는 실수나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경험한 아이들이 어려운 과제 앞에서 더 오래 버티고,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취를 보인다고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환경이 이 마인드셋을 만드는 토양이 됩니다. (출처: Mindset Works - Carol Dweck)
집에서도 자기주도성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자기주도성이 집에서도 이어지려면, 가정에서도 비슷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준이에게 가능한 선택권을 줍니다. 어떤 순서로 숙제를 할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고를지, 주말에 어떤 활동을 할지. 작은 선택들이지만 그것이 쌓여서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감각이 됩니다.
틀을 주되 그 안에서의 선택은 아이에게 줍니다. 구몬 학습지는 매일 아침 등교 전에 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오늘 어떤 문제부터 풀지는 준이가 정합니다. 리워드 차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일 목록은 제가 만들지만, 했는지 체크하는 것은 준이 스스로 합니다. 스스로 확인하고 평가하는 작은 경험이 자기주도성의 연습이 됩니다.
자기주도학습 연구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작은 선택과 책임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을 때 자기조절 능력이 발달한다고 합니다. 이 능력은 학업 성취뿐 아니라 또래 관계, 정서 안정, 문제 해결 능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기주도적인 아이는 학원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상의 반복이 만듭니다. 호주 학교가 그 방향을 먼저 보여줬고, 저는 집에서 그것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 Australian Curriculum - Personal and Social Cap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