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다 보면, 자원봉사라는 단어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의무는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 뉴스레터마다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공지가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처음엔 그냥 흘려봤는데, 어느 순간 제가 신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저에게도, 아이에게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져다줬습니다.
자원봉사 전에 받아야 하는 두 가지 서류
호주에서 학교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A)주 기준으로 두 가지 서류가 필요합니다. 처음엔 절차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고 나서 이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됐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이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구조였습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이렇게 촘촘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심이 됐습니다.
첫 번째는 WWCC(Working with Children Check)입니다. 여기서 WWCC란 아동과 함께 일하거나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모든 성인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신원 조회 증명서로, 아동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범죄 기록이나 유해한 배경이 없는지를 검증하는 국가 공인 제도입니다. SA주에서는 DHS(Department of Human Services) Screening Unit에서 관장합니다.
자원봉사 목적으로 신청할 경우 비용은 무료입니다. 유효 기간은 5년이며, SA주 내 다른 학교나 아동 관련 단체에서 봉사할 때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청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학교 행정실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학교 측에서 DHS 시스템에 등록하고 이메일로 신청 링크를 보내줍니다. 온라인으로 신분 증명을 완료하면 수일 내로 디지털 증명서가 발급됩니다. (출처: SA Screening Unit - Government of South Australia)
두 번째는 RRHAN-EC(Responding to Risks of Harm, Abuse and Neglect — Education and Care)입니다. 여기서 RRHAN-EC란 교육 및 보육 환경에서 아이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 즉 학대·방임·방치 등을 감지하고 올바르게 대응하며 신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아동 보호 의무 교육입니다. 교사나 직원들이 듣는 전문 과정과 달리, 자원봉사자를 위한 기초 과정(Fundamentals Course)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SA 교육부 플랫폼(Plink)을 통해 온라인으로 약 1~2시간 동영상 강의를 듣고 간단한 퀴즈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비용은 무료이며, 수료 후 인증서를 학교 행정실에 제출하면 됩니다. 유효 기간은 3년으로, 이후 갱신이 필요합니다. (출처: Department for Education South Australia)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자원봉사를 신청하기 전에 엄청난 긴장감이 앞섰습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데 아이들을 통솔하거나 다른 호주 부모들과 섞여서 일할 수 있을까, 제가 못하면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교육도 들어야 한다니 귀찮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그 걱정들이 기우였습니다. 학교와 다른 학부모들은 이민자 부모가 서툰 영어로도 시간을 내어 참여해준 것 자체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고마워했습니다. 완벽한 영어 문장 대신 내가 무엇을 도우면 될까?라는 적극적인 태도와 미소만으로도 문화적 장벽은 서서히 허물어졌습니다.
첫 자원봉사는 첫째의 첫 Swimming Week 때였습니다. 아직 아기 같은 다섯 살짜리가 혼자 옷을 갈아입고, 물건을 챙기고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일주일 내내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일하지 않는 이틀을 함께 갔습니다. 아이들이 이동하는 동안 선생님을 도와 통솔하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이가 있으면 함께 가줬습니다. 그날 첫째가 저 쪽에서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썰매 부스, 그리고 도서관까지
그다음 자원봉사는 학교 Fun Day였습니다. 여러 동물도 보고, 게임도 하는 행사였는데, 여러 부스 중 한 곳을 맡는 방식이었습니다. 자원봉사 학부모들이 정해진 시간에 따라 돌아가며 부스를 담당했습니다. 제가 맡은 곳은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부스였습니다. 아이들이 순서대로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말이 많이 필요 없는 활동이었고, 아이들이 신나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책의 커버를 씌우는 일입니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집에서 편한 시간에 책을 가져와 커버를 씌우고 다시 갖다 주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봉사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첫째가 도서관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도서관 일을 한다는 것을 아이가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작은 보너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서 커버만 먼저 씌우고 아이가 좋아하면 먼저 봐도 된다고 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2년째 도서관 봉사를 하고 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도서관 선생님께서 작은 초콜릿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기 전과 후, 저와 아이 모두에게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라는 공간이 낯선 이국땅의 기관이 아니라, 내가 속한 친근한 공동체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습니다.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교문 앞 학부모들과의 소통도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학교의 운영 시스템을 안쪽에서 직접 보니 학교에 대한 신뢰도 자연스럽게 깊어졌습니다.
아이도 달라졌습니다. 도서관에 책을 가져다줄 때마다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엄마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아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제가 못해서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호주의 교육 기관이 공동체(Community)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원봉사를 통해 몸으로 느꼈습니다. 다문화 국가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려면, 각자가 그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학부모의 자원봉사도 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을 생각하면, 내 아이만이 아니라 아이가 속한 학교와 커뮤니티 전체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감각이 한국 교육 현장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Parental Involvement)가 아이의 학업 성취와 사회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호주 교육 연구에서는, 부모가 학교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경우 아이의 학교 소속감과 학습 동기가 유의미하게 높아진다고 보고합니다. 거창한 봉사가 아니어도 됩니다. 책 커버 하나 씌우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출처: Australian Institute of Family Studies)
자주 묻는 질문
WWCC와 RRHAN-EC 둘 다 받아야 하나요?
SA주 기준으로 학교 자원봉사를 하려면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WWCC는 신원 조회 증명서이고, RRHAN-EC는 아동 보호 교육 이수증입니다. 학교 행정실에 봉사 의사를 밝히면 절차를 안내해줍니다.
영어가 서툰데 자원봉사가 가능한가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도서관 정리, 행사 보조, 아이들 통솔 등 유창한 영어 없이도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완벽한 영어보다 적극적인 태도와 미소가 더 중요합니다. 학교와 다른 학부모들이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자원봉사는 얼마나 자주 해야 하나요?
의무가 아닙니다. 도서관 봉사처럼 집에서 편한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행사 때만 참여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시작하면 됩니다.